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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번째 편지 - 7년간의 고전 공부, 끝나다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2016년 6월 24일 시작한 연세대 김상근 교수님과의 고전 공부가 지난 금요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친구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가 기획한 <루첼라이 정원>은 1기 34명으로 출범하여 7년간 봄, 가을 총 13학기 동안 고전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중 11학기를 김상근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습니다. 1기 첫학기가 끝났을 때, 김상근 교수의 강의가 폭발적 호응을 얻어 후학들이 생겨 현재 총 7기가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기별 인원을 합산하면 연인원이 총 3,939명에 이르는 거대한 학습조직입니다.

김상근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앞서 강신장 대표는 김상근 교수의 지난 7년을 회고하는 인트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김상근 교수님은 지난 7년간 루첼라이 정원에서 총 486회 강의를 하셨습니다. 1기에는 108회 강의를 하셨습니다. 대학교의 한 학기가 15강인 것을 감안하면 32학기, 16년 분량의 강의를 7년에 하셨습니다.

그동안 공부한 책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까지 총 105권, 총 페이지수는 무려 55,088페이지입니다.

김 교수님이 1기 108회 강의를 위해 만든 PPT는 14,265페이지입니다. 그 교재 속에는 총 2,494개 미술 작품을 인용해 주셨습니다.”

강신장 기획, 김상근 강의의 이 엄청난 작업은 한국 지식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입니다. 교수 한 명이 고전 105권을 읽어 그 핵심을 7년간 강의한다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강신장 대표는 교재 중 인상적인 페이지와 학습 여행 사진으로 책을 만들어 김상근 교수께 헌정하였습니다.

책 제목은 <그리운 것은 그대일까? 그때일까?> 입니다.

책 첫머리에는 “지난 7년 동안의 <인류지성사 탐험> 누구도 하지 못한 엄청난 대장정이었습니다. 김상근 교수님의 열정과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벽기도 보다 어렵다는 새벽 공부를 결심하고 13학기 동안 함께 해주신 도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김상근 교수님은 마지막 강의 말미에 지난 7년을 회고하며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매주 금요일 새로운 고전에 대한 강의를 여러분 앞에서 할 때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이 작업을 그냥 사라지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전이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최고의 PPT 페이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오딧세우스가 10년의 고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 페넬로페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앞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우리 모두 인생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또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도전 속에서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 엄청난 작업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과연 이 작업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였습니다.

서양의 엘리트들은 어릴 때부터 고전 읽기를 생활화하고 살아갑니다. 학교에서, 집에서 늘 고전 내용을 접하고 삽니다. 반면 동양에 자란 우리들은 책 제목만 알 뿐 한 구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

서양의 엘리트들은 인생의 힘든 시기를 만나면 학창 시절 읽었던 고전의 구절에서 힘을 얻고 자신의 방향을 재설정합니다. 이제 우리도 루첼라이 정원을 통해 고전이라는 그들의 <인생 무기>를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루첼라이 정원> 교재 첫머리에 <고전의 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고전의 힘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선각자들이 던진 최초의 질문에는 새로운 삶을 향한 진리의 단초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질문으로부터 인간의 사유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 갔고,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 김상근 교수의 책 <군주의 거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들보다 빨리 노를 젓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목적한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노를 저어왔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젓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라고 요구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자신을 성찰하라는 요구입니다.”

저는 평생 앞을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고민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다소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고개를 들어 북극성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루첼라이 정원>의 모토가 <PER ASPERA, AD ASTRA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입니다. 저는 루첼라이 정원에서 고전을 공부하며 힘들 때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김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고전 독서광입니다.

잡스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적혀 있을 정도입니다.

잡스는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방법 가운데서만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라. 애플을 만든 결정적인 힘은 고전독서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리드 칼리지 시절, 플라톤과 호메로스부터 카프카 등에서 고전 독서력을 키웠다” 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공부 마지막 시간에 고전 독서광 스티브 잡스에 대해 강의 들은 것은 우연치고는 참 기이한 우연이었습니다.

저는 김 교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스티브 잡스 강의를 들으니 잡스는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컴백하더군요. 교수님도 조만간 다시 돌아와 강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교수님은 이렇게 화답하였습니다.

“여러분 다른 공부를 하시다가 먼 훗날 제가 그리우면 부르십시오. 똑같은 고전을 다시 강의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우연히 <루첼라이 정원> 1기에 동참하여 7년간 고전을 공부하게 된 것은 제 인생에 행운입니다. 이런 기회를 준 강신장 대표와 김상근 교수께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또 7년간 같이 공부한 도반들께도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12.1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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