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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번째 편지 - 헤어져서 행복한 사랑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만나서 행복해지는 사랑’과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이 그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만나서 행복해지는 사랑입니다. 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헤어져서 행복한 사랑입니다.

오늘은 작은딸 다솔이를 결혼시키는 날입니다. 다솔이는 오늘 그 두 사랑을 다 경험하게 됩니다. 저희 부부도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을 위해 이제 다솔이와 헤어져야겠습니다.”

어제 친구 김중신 교수는 작은딸 김다솔을 결혼시키는 자리에서 이런 멋진 인사말을 했습니다. 역시 국어교육과 교수다운 스피치였습니다. 저는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이 스피치를 들으니 강신주 교수의 책 <감정수업>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불륜(不倫)이다. 기존에 속해 있던 ‘무리’(倫)를 부정하도록(不) 만드는 감정이 사랑이니까 말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속해 있던 무리(가족)를 떠나려 합니다. 이때 두 가지 사랑이 만들어진다고 김중신 교수는 설명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행복해지는 사랑과 한 여자가 부모를 떠나 행복해지는 사랑이 그것입니다. 아무튼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이라는 표현은 어제 처음 들은 표현이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말입니다. 저희 집에도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을 해야 할 과년한 딸이 있습니다.

얼마 전 저희 부부는 딸아이에게 독립할 것을 권했습니다. 딸아이도 이에 동의를 하고 집을 구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딸아이가 결혼하면 당연히 생길 일을 사전에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딸아이를 독립시키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하게 잘 몰랐습니다. 그저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독립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도 생각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부모에게 의존해서 지낼 수는 없으니까요?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내가 독립한다고 하니까 아빠 마음이 어때?” 딸아이가 어떤 답을 기대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진작 독립시켜야 했는데 너를 너무 오래 데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듣고 나니 묘한 해석이 머리를 스칩니다. 원래 여자는 나이가 들면 남자를 만나 ‘만나서 행복해지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부모와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딸아이와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혹시 딸아이에게 ‘만나서 행복해지는 사랑’이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기를 기대해 봅니다.

10월 31일 딸아이가 독립을 합니다. 이제 딱 20일 남았습니다. 소중한 20일입니다. 그 기간 동안 딸아이에게 부모와의 헤어짐이 행복을 위한 길임을 정확하게 각인시켜 주고 싶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지만 저는 딸아이가 제 액세서리이기를 바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대학입시에서 떨어진 순간 그녀가 그 역할을 못 해준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10년 후 공식 사과하며 매듭을 풀기는 하였지만 그 상처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간간이 다시 재발하여 부녀관계를 힘들게 만들곤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유리그릇 같아 깨지기 쉽습니다. 특히 사춘기와 대학입시기를 거치면 대개 그 그릇의 상당수가 박살 나 있지요. 그러나 그 그릇을 보존할 책임은 자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습니다.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 자식들에게 부모는 평가자가 되기보다는 친구가 되어 주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한참을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5월 10일 월요편지)

“진정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이들이 필요로 할 것이라고 제 스스로 짐작하여 먼저 주는 사랑이 아니라 한발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정말 힘들어할 때, 그들이 혼자 걷기 어려울 때 다가가 제 어깨를 내어주고 안아 주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2년 2월 6일 월요편지)

아이들을 키우며 뒤늦게 깨달아 월요편지에 기록한 내용들이지만 정작 살면서는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딸아이 윤아가 독립을 준비하는 20일 동안, 윤아의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할 것입니다. 이미 집 계약도 마친 상태라 이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도 윤아가 혼자 헤쳐 나가도록 저는 지켜만 볼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 힘들어 저를 뒤돌아보면 그때 제 손을 내밀어 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 모두가 공유하여야 할 사실은 독립은 <헤어져서 행복해지는 사랑>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헤어져서 서로 불행해진다면 우리는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 길도 우리 가족은 처음 걷는 길입니다. 그 길에 어떤 돌멩이가 있을지 어떤 웅덩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가족 모두 힘을 합쳐 살피며 걷노라면 그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10.1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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