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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번째 편지 - 전화 공포증



지난주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의 강의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 강의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전화는 무례한 기기이다. 전화가 편하면 나이가 든 것이다. MZ 세대는 전화보다는 SNS나 문자를 선호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전화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화가 걸려 올 때 가장 긴장한다.

전화가 올 때의 심장박동수가 운동할 때의 심장박동수보다 높다. 직장 상사가 근무 시간 이후에 전화를 하는 것은 최악이다. 절대로 전화하지 말아야 한다. 모르고 하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 하면 사악한 것이다.”

MZ 세대가 SNS를 선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화 공포증을 겪고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영국의 2019년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40%, 밀레니얼 세대의 76%가 전화가 울리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의 2020년 조사에서 성인남녀 53.1%가 전화 공포증을 겪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 조사에서 성인의 58%가 전화보다 SNS나 문자 등 비대면 소통에 익숙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최근에 한 프로젝트 때문에 다른 회사 젊은 직원들과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100% SNS로 소통합니다. 아마 전화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전화가 편한데 모두 SNS로 소통합니다.

저는 SNS가 불편합니다. 미묘한 생각과 감정을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들이 SNS가 편해서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송 부사장의 강의를 들어보니 그들은 전화가 불편해 SNS를 쓰고 있는 모양입니다.

<낯선 이웃>은 근대 대도시의 상징입니다. 대도시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저도 젊은 직원들을 다 알지 못합니다. 이를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비인격적 만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비인격적 만남>에서 <타인과의 소통>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고 합니다. 반면 각자는 타인의 속내를 알아내려고 합니다. 이 모순이 현대사회의 특징입니다.

비인격적 만남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직접 대면', 둘째 '핸드폰 통화', 셋째 'SNS나 문자'입니다.

'직접 대면'에서는 소통하는 두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습니다. 따라서 소통할 때 타인의 눈과 몸짓을 보면서 그의 속내를 읽게 됩니다. 비교적 정확하게 타인의 속내를 알아 내게 되고, 반면에 여간해서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어렵습니다.

다음 '핸드폰 통화'에서는 소통하는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습니다. 즉, 상대를 직접 보지 못합니다. 오로지 타인의 목소리로만 타인의 속내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타인의 속내를 알아차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는 직접 대면보다 수월합니다.

저는 예전에 전화 트라우마가 있어 극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극복했지만 예전에는 전화로 약속 잡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시간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안된다고 답변하면 그것이 약속을 거절하는 것인지 저 자신을 거절하는 것인지 상대의 속내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익숙해졌고, 모든 거절을 저 자신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거절로 이해하기로 정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타인의 속내를 알아차려 편해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속내를 알아차리는 작업을 포기했기 때문에 편해진 것입니다.

끝으로 'SNS나 문자'는 같은 공간에 있지도 않고 같은 시간에 있지도 않습니다. SNS나 문자에 대해 실시간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택적으로 시차를 두고 답변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SNS나 문자는 의도를 가지고 문장을 다듬을 수 있어 사실 작성하는 사람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SNS나 문자를 통해 타인의 속내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SNS에 좋은 글을 올렸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글귀를 보고 감동받은 경우에 “최고입니다.” 문자나 이모티콘을 보낼 것입니다. 반대로 그 글을 보고 “이렇게 할 일이 없나. 이런 것이나 보내게.”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의상 “최고입니다.” 문자나 이모티콘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고입니다.” 문자나 이모티콘을 받은 사람은 상대방의 진심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SNS나 문자는 직접 대면이나 핸드폰 통화에 비해 감정 소통에 미흡합니다.

젊은 세대는 이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직접 대면'이나 '핸드폰 통화'를 하면 자신의 속내를 들키기 쉬운데 SNS나 문자는 얼마든지 자신의 속내를 숨길 수 있으니까요.

결국 낯선 이웃과의 비인격적 만남은 '직접 대면'에서 시작하여 '핸드폰 통화'를 거쳐 'SNS나 문자'에 도달하였습니다.

외견상으로는 훨씬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표현하게 되었지만 반대로 상대방의 속내는 점점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작동하길 기대합니다.

저도 이제 웬만하면 핸드폰 통화보다는 SNS나 문자를 더 활용하려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야 하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8.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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