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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번째 편지 - 춤추는 버진로드



봄이 되니 피는 것이 꽃만이 아닙니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 남녀들이 활짝 피어 한 쌍을 맺습니다. 결혼식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어서인지 코로나로 미루어 두었던 청첩장이 잇달아 날라 듭니다.

얼마 전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신랑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쯤에 저는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장하려는 신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신랑 혼자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신랑의 아버지인 제 친구가 같이 서 있었습니다. 신랑 입장이 시작되자 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행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잘생긴 아들을 하객들에게 선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이 친구가 제 아들입니다. 이만하면 잘 키웠지요. 이놈이 오늘 예쁜 신부를 맞습니다. 여러분 축하해 주세요. 제 아들 어떻습니까. 잘 생겼지요. 저는 자랑하고 싶어 이 길을 아들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제 친구의 발걸음 발걸음 하나하나는 이렇게 당당히 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객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을 섞어 축하해 주었습니다.

요즘 결혼식이 전통적인 예법에서 탈피하여 다양하게 바뀌고 있는 트렌드는 알고 있었지만 신랑 아버지가 신랑을 데리고 입장하는 모습을 보기란 처음이었습니다.

참 보기 좋았습니다. 신부 아버지가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를 데리고 천천히 아쉬움과 설렘으로 빨간 버진로드를 걸어 들어가는 익숙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마치 부자 모델이 패션쇼 런웨이를 걷는 듯했습니다.

결혼식 후에 친구를 만나 참 멋있었다고 칭찬해주었더니 친구는 사실 좀 쑥스러워 망설였는데 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저도 훗날 아들 결혼 때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집안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 주례로 진행되는 결혼식이라 성당에서의 결혼식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은 엄숙하리라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신랑 입장 순서가 되었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결혼식도 신랑이 신랑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였습니다. 두 번째 봐서 그런지 저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는데 하객들은 웅성웅성하더니 수근수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처음 본 충격과 같을 것입니다.

다음은 신부 입장 순서입니다.

사회자는 이번 신부 입장은 좀 특별하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면 펑펑 울 것 같다며 신부가 혼자 입장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객들께서는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신부가 버진로드 끝자락에 다소곳이 서 있습니다. 신부 손에는 부케용 꽃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음악만 나오면 발을 뗄 순간입니다.

신부 행진곡은 여러 가지 음악이 사용되지만 단연 1위는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의 혼례의 합창에 나오는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입니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신부 입장곡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유럽 귀족들이 결혼행진곡으로 사용하였고 우리나라 신부들도 이 곡을 선택합니다.

저는 당연히 이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였는데 흘러나온 음악은 예상외의 댄스곡이었습니다. 신부는 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율동은 처음에는 수줍은 듯 작게 흔들리더니 음악이 격렬해지자 마치 클럽에 온 듯 강렬하게 몸을 흔들며 발을 내딛습니다.

일순 결혼식장은 클럽으로 변하였고 하객들은 모두 핸드폰을 꺼내 들고 신부의 춤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젊은 하객들은 자리에서 같이 몸을 흔들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신부가 버진로드를 반쯤 춤추며 걸어갔을 때입니다. 반대쪽에서 한 사람이 춤을 추며 다가왔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춤추며 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젊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신랑은 주례 목사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춤의 주인공은 신부 아버지였습니다. 신부 아버지는 춤에 꽤 자질인 있는 분이었습니다. 팔을 쭉쭉 뻗으며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버진로드 중간에서 신부와 신부 아버지는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버진로드를 걸어 신랑에게 다가갔습니다. 신부 아버지는 신부를 신랑 손에 건네주는 임무를 당당히 마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평범하고 지루할 것 같았던 결혼식은 파티로 바뀌었고 하객들은 모두 흥분된 표정들이었습니다.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하였지만 이렇게 흥겹고 재미있는 결혼식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목사님의 주례사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예식 순서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가 버진로드를 걸어 나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보았던 장면입니다.

그러나 입장이 특이했던 만큼 미래를 위한 두 사람의 행진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역시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버진 로드를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춤을 추며 나아갔습니다.

현대식 결혼식이 우리나라에 도입한 이래 수없이 많은 신랑 신부들이 버진 로드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장 때와 퇴장 때 춤을 춘 신랑 신부는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춤은 하객들을 즐겁게 하였고 하객들 가슴에 이 신랑신부는 평생을 춤추듯 아름답게 살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인생이 한편의 댄스파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좋을 때는 신나는 곡에 맞춰 발랄하게 춤을 추며 감정을 발산하고, 슬플 때는 처연한 곡에 맞춰 느릿느릿 춤을 추며 감정을 삭인다면 그 인생 멋진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 신혼부부를 보면 그들 인생에 언제나 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4.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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