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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번째 편지 - 봄눈이 오는 이유



지난주 토요일 봄눈이 내렸습니다. 골프 약속을 했다가 골프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약속 없는 텅 빈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골프장을 문 닫게 만든 봄눈이지만 서울에는 오면서 녹아 봄눈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노닥거리다가 오후가 되어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차를 몰고 시골집이 있는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기저기 눈꽃이 피었습니다. 골프장은 아예 봄눈이 점령했습니다.

시인이라면 이 광경을 보고 그저 지나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인들은 그 봄눈을 어떻게 맞이했을까요. 그 어느 해 섬진강에도 봄눈이 왔나 봅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 광경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강 건너 마을 뒷산 밭에도, 밭으로 가는 실낱 같은 길에도 눈은 쌓이지 않는다. 감쪽같이 녹아버리는 눈송이들로 촉촉하게 젖은 땅 위에 벌써 파란 풀잎들이 돋아나 있고, 어떤 풀들은 꽃을 피웠다. 흰 눈 날리는 날 핀 풀꽃들은 눈이 시리다."

봄눈은 시인의 표현처럼 감쪽같이 녹아버리기에 더 애잔합니다. 쌓이는 듯싶다가도 금세 녹아버립니다. 그러나 시인들은 그 순간을 잘 포착하여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봄눈을 그려냅니다.

"눈이 내린다

봄이라서

봄빛처럼 포근한 눈

담장 위에 쌓이는 봄눈

나무 위에 쌓이는 봄눈

마당 위에 쌓이는 봄눈

그리고

마루에서 졸다가 깬

눈을 하고 앉은

새끼 고양이의 눈 속에도

내리는 봄눈

감았다 떴다 하는

새끼 고양이의 눈처럼

보드라운



봄 하늘

봄 하늘의 봄눈"

오규원 시인의 <포근한 봄>이라는 시입니다. 담장 위, 나무 위, 마당 위에 쌓인 눈은 우리도 볼 수 있는 봄눈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마루에서 졸다가 깬 새끼 고양이 눈 속에 있는 봄눈을 찾아 냈습니다. 그 봄눈은 고양이 눈처럼 보드랍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포근한 봄을 느낍니다.

그러나 봄눈을 그려낸 시인 중에 압권은 정지용입니다. <춘설>입니다.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멧부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 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숭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한글로 쓰인 시인데 어쩐지 생경합니다. 뭔지 모르는 우리 것이 배어있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삼스레 눈이 덮인 멧부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는 표현을 현대식으로 설명하면 "눈 덮인 산이 이마에 닿을 듯 가깝게 보여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같은 뜻 다른 표현입니다.

"옹숭그리고 살아난 양이"는 "추위에 움츠리다가 봄을 맞아 살아난 생명"이라는 뜻이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을 오물거리는"은 "움직이지 않던 물고기 입이 움직이는"이라는 뜻입니다.

시인들은 봄눈에서 어떤 의미를 생각해 냈을까요. 봄눈과 가장 많이 어울리는 단어는 '녹는다'입니다. "봄눈 녹듯." 시인들은 녹는다는 이미지에서 '용서'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봄눈과 용서.

시인 정호승은 <봄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시인 고미는 <봄눈이 오는 건>이라는 시에서 봄눈 오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켜켜이 남모르게 쌓아 둔 원망이나

밤잠을 설쳐 대며 미워한 마음들을

이제는 봄눈이 녹듯 녹이라고 오는 게야."


지난 3월 9일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꼭 열흘이 지나 3월 19일 봄눈이 내린 이유는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남모르게 쌓아 둔 원망과 밤잠을 설쳐 대며 미워한 마음들을 봄눈처럼 녹여버리라고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늦게 봄눈이 내린 것은 2020년 4월 22일입니다. 그날까지는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습니다.우리들 마음속 원망과 미움이 이번 봄눈으로 다 녹여지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더 봄눈이 내려 우리 마음을 정갈하게 해주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3.2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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