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16. 06 한국경제 - 한경에세이] [5주차] '마음의 봄날'을 부여잡고 싶다

신록이 무서운 기세로 봄을 밀어내고 있다. 문득 몇 년 전 친구가 녹음해 보내준 ‘봄날은 간다’ CD가 생각났다. 백설희 씨의 노래 ‘봄날은 간다’를 23명의 가수가 부른 것이다. 처음 그 CD를 받고 한 달 내내 들었던 기억이 나서 다시 꺼내 들어봤다.

첫 번째는 강허달림 씨가 부른 것이다. ‘봄날은 간다’ 다섯 글자를 낭독하고 한참을 쉰다. 소리를 뱉듯 말듯 더듬거리며 첫 소절을 시작한다. 가사를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낭독은 어느새 블루스 곡이 된다.

권윤경 씨가 일본어로 번안해 부른 ‘春は行く(하루와 유쿠, 봄날은 간다)’가 흘러 나온다. ‘꽃이 피면 같이 울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의 일본어 가사‘花き 頰笑み 花散り 泣い出た(하나사키 호호에미 하나치리 나이테다)’를 들으면 한국어 가사처럼 애잔하다. 

원곡을 부른 백씨의 노래가 나온다. 애처롭다 못해 숙연해진다. 그의 목소리엔 화음이 있다. 고운 음엔 가사가, 떨리는 음엔 감정이 실려 있다. 두 음은 절묘하게 한 음이 된다. 

필자가 좋아하는 장사익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는 피를 토하듯 소리를 내고, 애끊듯 한을 삼킨다. 가슴을 후비다 못해 뚫어버린다. 소리를 하다 죽을 것 같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부분을 듣다가 잠시 음악을 껐다. 아직 그의 소리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혼절할 것 같은 정신줄을 부여잡고 어금니를 깨물어 진정시킨다. 황홀경 속에 모든 ‘봄날이 간다’가 끝났다.

‘봄날은 간다’란 노래가 이토록 가슴을 파고드는 건 봄날이 짧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독히 길어 봄이 안 올 것 같더니, 나무 한두 그루에 새싹이 난다. 봄바람이 몇 번 심통을 부리면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가 앞다퉈 핀다. 잠시 벚꽃에 취하고 나니 어느새 영산홍이다. 그것도 일순간, 꽃을 시샘한 신록이 온 천지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봄날을 강제로 떠나 보내고 있다. 


 
50대의 삶을 살면서 매년 20대 청춘 시절과 같은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건 자연의 축복이다. 봄이면 청춘의 열정이 새싹과 함께 살아 꿈틀거린다. 그러나 봄날이 훌쩍 떠나고 나면 마음속 청춘마저 사라지고 만다. 

올해의 봄날도 노랫말처럼 떠나갈 것이다. 그러나 계절의 봄날은 떠나가더라도 마음의 봄날은 부여잡고 싶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