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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번째 편지 - 자식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친구이여야 합니다

            자식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친구이어야 합니다.

  어느 집의 모습입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아빠는 아들에게 묻습니다. “쟤 너보다 공부 잘 하니? 아버님은 무엇 하시니?” 아들은 아빠에게서 무슨 세상을 배울까요. 나보다 나은 사람만 사귀어야 하고 집안이 좋은 아이들과만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겠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공부 잘하는 아이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공부 못하는 집 아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할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통해 자신들의 한을 풀려고 합니다. 자신들은 학창시절 공부에 별 재능이 없었어도 아이들만큼은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자신들은 운동을 잘 못하였어도 아이들만큼은 프로운동선수 못지않게 운동을 잘하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이 늘 천재이거나 슈퍼스타이기를 희망하지요.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바람을 아이들에게 얹어 생각하지요.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신의 아이들이 그저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서운해 하며 때로는 화를 내지요. 그 순간 감정 관리를 잘 못하면 아이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요. 자식은 부모의 악세사리가 아니지만 부모들은 자식 자랑을 통해 뿌듯해 하고 싶어 합니다. 때론 팔불출 소리를 들어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식들은 부모들의 영원한 악세사리이지요.

  저도 딸과 이런 관계를 한동안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딸은 저의 기대대로 악세사리 역할을 해주지 못하였지요. 급기야 딸이 대학입시에서 떨어지자 딸이 하는 모든 일이 미워 보이더군요. 무시하고 화내고 닥달하고 그래서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아내는 ‘당신 그러다가 먼 훗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였습니다. 그 후 딸은 재수대신 미국유학을 선택하였고 미국 대학교에 합격하였습니다. 3년 전의 일이지요.

  저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딸아이에게 공식으로 사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딸 사이에 풀지 못한 매듭이 있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 딸아이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나버린 딸아이와 어쩌면 영영 그 매듭을 풀지도 못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브라질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짬을 내어 뉴욕에서 대학교 3학년이 된 딸아이를 만났습니다. 휴가를 붙여 온전히 2일을 비워두었습니다.

  저도 딸아이도 이번 기회가 서로의 매듭을 풀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매듭이 무엇인지 그 매듭을 풀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지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딸아이와 함께 한 1박2일은 그 매듭이 저절로 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박2일을 딸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맡겨두었습니다. 아마도 딸아이는 저를 의식하며 스케줄을 짰겠지요. 우리는 1박2일이 서로에게 너무도 편안한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이 매듭이 생겨나서 푸는 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가 끝나고 딸아이에게 실망한 순간부터 계산하면 말입니다. 없었으면 좋았을 10년이었지요.

  혹시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런 시기를 지내신 분도, 지내고 계신 분도, 어쩌면 앞으로 닥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지난 날을 생각하면 이런 시기는 없도록 부모들이 노력하여야 합니다. 우리들도 부모의 악세사리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는 못하였을 테니까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유리 그릇 같아 깨지기 쉽습니다. 특히 사춘기와 대학입시기를 거치면 대개 그 그릇의 상당수가 박살 나있지요. 그러나 그 그릇을 보존할 책임은 자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습니다.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 자식들에게 부모는 평가자가 되기보다는 친구가 되어 주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한참을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들의 고민을 진정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부모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월이 한참 지나 깨닫고 이번에 뒤늦게 딸아이에게 친구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딸아이가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친구’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서로를 그 모습대로 믿어줄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 쯤은 잘 알고 계시겠죠.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5.1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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