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538번째 편지 - 어느 노부부의 결혼 50주년 금혼식

 

지난주 금요일 저녁 저희 가족 모두가 존경하는 어느 노부부의 결혼 50주년 금혼식에 참석했습니다. 딸아이가 그 행사의 기획을 맡는 바람에 우연히 처음부터 그 금혼식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부는 자녀들이 없어, 자녀들이 아닌 그 부부로 인해 성공한 후배분들이 존경의 마음으로 그 부부의 금혼식을 마련하였습니다.

"아빠 금혼식 아이디어 좀 주세요." 얼마 전 딸아이가 느닷없이 SOS를 쳤습니다. "글쎄 행사가 너무 틀에 박히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러나 가볍지 않고 가슴 뭉클함이 있으면 좋겠어. 자 생각해 보자." 딸아이의 요청을 받은 저는 신이 났습니다. 그 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딸아이에게 쓸모 있는 아빠인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잘하는 편지 쓰기를 하면 어떨까. 남편이 아내에게 손편지를 써서 낭독하게 하는 거야." "좋아요." "그리고 참석자들을 상대로 그 부부에 대한 OX 퀴즈를 해서 선물을 주면 어떨까. 예를 들면 '두 사람은 프러포즈한 장소를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있다. 남편은 최근 1년 안에 아내의 발을 씻어 준 적이 있다.' 등등 이런 질문을 10개쯤 만들어 OX를 하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에게 선물 주는 거지." "재미있겠어요." 부녀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행사 당일이 되었습니다. 30분 전에 아내와 같이 행사장에 도착해 보니 200여 명의 참석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연신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부부의 사진을 영상으로 만든 것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프로젝트와 연결해 영상이 나오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영상이 다 만들어지려면 10분쯤 남았습니다. 행사 시작까지는 20분. 초 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도와주고 싶지만 제가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것 같아 자리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랑신부 아니 구랑 구부가 남편이 얼마 전 주례를 서준 신혼부부의 인도를 받아 화동들과 함께 입장하였습니다. 드디어 동영상 차례입니다. 화면이 불안정합니다. 저는 행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마조마하였습니다. 혹시 딸아이가 행사를 망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다행히 동영상은 사고 없이 잘 방영되었습니다. 동영상의 내용도 뭉클하게 딸아이가 잘 만들었네요. 제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행사 진행실에 있는 딸아이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이제 이대로 잘 진행만 되면" 큰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축사와 축가로 이어질 테니 화면 사고가 나더라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축사를 위해 컴패션 사역을 하는 서정인 목사님이 단상에 섰습니다. "결혼하여 50년을 같이 산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 아시죠. 빌리 그래함 목사의 부인이 루스 벨 그래함입니다. 그분들이 결혼 50주년을 맞이했을 때 기자가 루스 벨 그래함에게 물었답니다. '살면서 이혼하고 싶을 때가 있으셨나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혼하고 싶을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이고 싶을 때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모두 포복절도하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가 각기 인사말을 하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늘 하얀 드레스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50년 전 결혼할 때는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을 살다 보니 이런저런 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이 옷에 붙은 반짝이처럼 어떤 때는 벼락이 치기도 했지요. 그래서 이런 색깔 있는 옷을 입었습니다."

OX 퀴즈 시간이 제일 시끌벅적하였습니다. 역시 선물이 있어 모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선물은 노부부가 사명으로 삼고 있는 컴패션 봉사를 하기 위해 오지를 가는 비행기 표입니다. 화려한 여행보다 이런 의미 있는 여행이 오늘의 행사에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빨간색 버진 로드로 노부부가 퇴장을 하고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50년 전 두 젊은이가 손을 잡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걸었던 길을 이제는 그를 따르는 많은 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50년의 세월이 그 부부에게 이런 기적을 가능하게 해 준 것입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부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미지의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 파트너를 고르는 일이 바로 부부입니다. 사랑으로 만나지만 사실 두 사람은 동업자입니다. 동업자는 서로 성격이 같기보다는 달라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서로 보완해주기 때문이지요. 부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은 성격보다는 다른 성격이 만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여기에 진화의 비밀이 있는 것 아닐까요. 원래 친구는 같은 성격, 취향, 스타일이 만납니다. 그러니 죽고 못 삽니다. 늘 붙어 다닙니다. 싸울 일이 거의 없지요. 그리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화제도 취미도 거의 같습니다. 저는 부부가 이성 친구의 연장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전혀 다릅니다. 서로 같은 타입이 만난 부부와 서로 다른 타입이 만난 부부 중 어느 부부가 인생에서 성공할까요. 아마도 동업의 예에서 유추해 보면 후자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파트너를 고르는 것이 진화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DNA에 각인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타입의 파트너를 만나면 불편할 것입니다. 그런 어색함과 불편함을 호르몬이 눈에 콩깍지를 씌워 사랑을 하는 동안은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호르몬의 효능이 사라진 30개월부터는 사사건건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서로 자제합니다. 그러나 원래 다른 타입이니 걸핏하면 칼로 물 베기라는 그 유명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전쟁의 수위가 높아지기 어려웠습니다. 사회적 제약, 가정의 제약 등이 이를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반대로 인내의 한계는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부부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를 전제로 부부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만 전쟁을 인내의 한계 안에서 한다는 서로의 묵시적 합의가 필요하지요. 이것을 부부간의 금도라 일컫습니다. 운전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다시금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보다 목소리가 높아진 아내는 사안에서 저와 견해가 다릅니다.

이를 불편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안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 더 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신은 이를 위해 서로 다른 타입을 부부로 만드신 것일 테니까요.

오늘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노부부도 저희가 보기에는 정말 다른 타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50년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수위는 낮추고 인내의 수위는 올리는 현명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희 부부가 50주년을 맞이하려면 18년이 남았습니다. 딸아이에게 이번에 연습했으니 그때 잘 준비해 달라고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0.22.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