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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번째 편지 - 나 홀로 식당에서 드는 의문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제주를 찾았습니다. 저는 코로나19 이후 처음 비행기를 탄 셈입니다. 공항이 붐빈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듣고 있어 어느 정도 각오는 하였지만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은 전혀 딴 세상이었습니다.

제주는 코로나19와 전혀 무관한 세상 같았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식사하기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면 문제없겠지만 제주까지 왔으니 유명한 맛집을 가고 싶은 마음에 식당을 골랐습니다.

금요일 오전 골프를 하고 1시경 골프장을 나서 맛집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가 제주에 사는 분에게 연락을 하여 몇 군데를 추천 받았습니다. 골프장에서 20여 분 달려 <춘심이네 본점>을 찾았습니다.

주차장에 차가 꽉 차있는 것으로 보아 맛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주차 안내하는 분이 재료가 다 떨어져 점심 손님을 더는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후 5시경 다시 손님을 받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추천받은 <중문보말칼국수>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다행히 차로 10분 거리에 있어 시장기를 참을 만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30분 이상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유명 맛집의 복잡함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일행 4명은 하는 수 없이 인근에 주차를 하고 네이버로 인근 맛집을 찾아 적당한 곳에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4명이 열심히 핸드폰을 검색하였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한 곳을 찾았습니다. 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습니다. 뒤따라 들어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너무 작은 규모에 놀라고 허술한 분위기에 두 번 놀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나올 집이었습니다.

시각은 2시 반, 허기진 배가 더 이상의 탐색을 허용하지 않아 눈치를 보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과연 어떤 식당일까? 음식은 맛있을까? 이곳을 안내한 분은 네이버 평점이 높다며 애써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가냘프고 삶에 지친 표정의 여주인 한 분만 있는 식당. "뭐가 맛있어요. 쥐치조림 어때요." 이 질문에 대답은 "있으면 무조건 먹어야 하고 대부분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쥐치조림이에요. 운 좋은 사람만 먹을 수 있어요."

주인의 대답은 선택을 봉쇄하였다.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우럭조림은 애당초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여주인 혼자서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니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밑반찬이라도 좀 주면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을 텐데 줄 기색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반찬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밑반찬이라고는 김치 한 접시가 전부. "반찬 많이 줘봐야 안 먹고 남기기에 아예 안 만들어요."

그리고 생김 한 접시. 그리고 쥐치조림.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소스를 만들었는지 거무튀튀하였습니다. 주인은 쥐치를 일일이 발라주면서 생김에 밥을 조금 얹고 그 위에 쥐치조림을 얹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나온 것이 이것 뿐이니 어쩔 수 없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반전은 여기부터 였습니다. 조림이 너무 맛있어 먹는 내내 4명이 주인에게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밥도둑이라는 말은 이때 쓰라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밥을 한그릇 더 시켰습니다. 그것도 금새 먹어 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생김을 조림 국물에 찍어 먹기 바빴습니다.

오지랍 넓은 저는 참지 못하고 주인께 질문하였습니다. "왜 식당에 종업원을 안쓰세요. 그리고 더 크게 넓히셔도 이 정도 맛이면 손님이 많을 것 같은데요." "직원을 두었더니 마음에 안들어 혼자 하고 있습니다."

"체인점을 하시거나 요즘 대세인 냉동 가공식품으로 만들어도 성공하실 것 같은데 관심없으신가요. 아니면 소스만 파셔도 잘 팔리실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안하셨나요." "제가 식당을 하는 지난 20년간 1000명쯤 그런 이야기를 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호텔 주방장도 단골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데, 손님들은 오늘 운 좋게 먹게 된 것이라고 공치사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조림 맛은 생애 최고였습니다. 그 식사이후에도 제주에서 두번 조림을 먹을 기회가 있었지만 차원이 달랐습니다.

정말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최고의 진미를 맛보고 나오면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왜 식당에 종업원을 두지 않을까?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것은 효율도 성과도 나지 않는 법인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할까?

두 번째 왜 식당 규모를 넓히지 않을까? 불과 4인석 4개 밖에 없는 식당으로는 매상을 충분히 올릴 수 없을텐데 허름한 식당을 고집할까?

세번째 왜 노하우를 공유하는 프랜차이즈에 도전하지 않을까? 돈벌이 측면도 그렇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2호점 3호점 식으로 프랜차이즈를 지향하지 않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네번째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업화를 권유하였다면 시도를 해 볼 수는 있었을텐데 도전에 나서지 않고 나홀로 식당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다섯번째 소스만이라도 상품화 할 수 있었을텐데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하우는 얼마든지 비밀로 하는 방법이 있었을텐데.

저는 그날 그 여자 주인 분을 처음 보았습니다. 친절하고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업화에 대한 의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무엇이 옳은 결정일 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 의문은 숙제로 남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 여주인 같은 인습에 머물고 있을지 모릅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인생. 도전을 두려워 하는 인생. 그러면서 힘들어 하는 인생.

삼진이 두려워 야구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면 안타도 홈런도 만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새삼 느껴지는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4.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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