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663번째 편지 - 럭셔리 가구를 통해 얻으려는 것



지난 2월 집 일부에 대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침실과 AV 룸이 너무 휑하여 손을 좀 보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영국제 가구 브랜드 하나에 필이 꽂혀 그 가구를 살 요량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왜 영국제 가구냐고요. 그냥 스타일이 멋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그 가구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았고 매장에 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마음먹고 그 가구점에서 예산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왔습니다.

결국 가구 구입을 포기하고 예전에 늘 하던 대로 인테리어 스타일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평범한 인테리어 업자에게 맡기면 비용이 그 천문학적 숫자의 10분의 1도 안 드니까요.

아내는 아내대로 저는 저대로 인터넷도 뒤지고 넷플릭스의 인테리어 프로그램도 열심히 공부한 결과,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았고 그 스타일대로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고급 인테리어 스타일이란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에 있는 부잣집의 인테리어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요.

'노블'이나 '럭셔리'라는 이름이 붙은 빌라 입구에는 대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을 본뜬 조각상들이 있습니다. 바닥은 대리석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집에 들어가면 방에는 유럽 왕궁 가구의 복제품 같은 침대와 의자, 화장대가 세트로 놓여 있습니다. 이 스타일은 누가 정했을까요.

저는 오래전에 읽은 책 하나를 서재에서 집어 들었습니다. 미술사학자 이지은이 쓴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는 가구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은데 저의 궁금증을 풀어줄 내용도 들어 있었던 기억이 난 것입니다.

이 책은 이야기를 1852년 프랑스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루이 나폴레옹이 자신을 나폴레옹 3세라 칭하고 왕이 됩니다. 그 부인은 자신의 거처인 생클루 성을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로 장식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새로 사들인 파리 근교의 페리에르 성 내부를 <루이 13세부터 루이 16세에 이르는 시대의 스타일>을 모두 동원해 장식하였습니다. 이처럼 19세기에는 한 세기 전인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의 화려하였던 왕실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이 복고 유행에 불을 붙인 것은 신흥 부르주아들입니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번 그들은 과거 왕정 시대의 성과 그 내부의 화려한 장식이 탐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명예와 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안을 과거의 문화로 치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루이 13세의 장식장, 루이 15세의 의자 등이 집안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각 시대별 유명한 작품과 예술적 경향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양 넘치는 중산층이 된 것입니다.

당시의 새집들은 실내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첫째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 둘째 가족의 생활 공간, 셋째 부엌이나 세탁실 같은 작업 공간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지금의 집들보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서 거실을 네 개까지 둔 집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레스토랑과 커피숍이 없던 당시에는 집안에 이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흥 부르주아들은 이 공간들을 어떻게 장식하였을까요. 제가 가진 의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각 방의 용도와 스타일에 따라 색다르게 꾸미는 것을 선호하였습니다.

남성적인 공간인 살롱, 서재, 식당, 끽연실 등은 장중하고 무게감 있는 <루이 13세>나 <루이 14세> 스타일로 꾸미고, 가족들 방은 <루이 15세>나 <루이 16세> 스타일의 가구들로 장식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한 공간은 한 가지 스타일로 통일하여 연출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가구 제작자들은 모든 가구를 <세트>로 팔았습니다. <루이 14세 식 거실 세트>, <루이 16세 식 침실 세트> 등이 당시의 가구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상품들이었습니다.

19세기의 인테리어 잡지들은 이런 스타일을 <모던 morden>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이런 스타일을 <럭셔리 luxury>라고 부르는데 말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신흥 부자들의 취향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원을 모르는 채 인테리어 잡지나 가구 업자들이 안내하는 대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취향에 맞는 가구를 고를 뿐이지요.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는 프랑스 왕실 인테리어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려 하였던 19세기 프랑스 신흥 부자의 후예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집 인테리어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신흥 부자들이 가지고 싶었던 공간의 모습이 프랑스의 화려하였던 18세기 왕실 공간 모습이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부자들은 어떤 공간을 가지고 싶을까요.

같은 원리대로라면 19세기 조선의 왕실 공간을 가지고 싶어야 맞지만, 우리들은 그 공간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유럽 왕실의 공간이나 미국 부자들의 공간을 막연히 동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 부자들의 공간도 그 원류를 따지면 유럽의 왕실 공간을 카피한 것일 테니 결국 우리는 유럽,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였던 프랑스 루이 13세부터 루이 16세까지 시대의 공간을 동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구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역사적 지식도 없이 그저 멋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국 가구를 구입하려 하였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신흥 부자들이 18세기 왕실 가구로 공간을 치장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을 정신적으로 닮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적 불명의 가구에 둘러싸인 우리들은 그 가구들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요. 적어도 저는 이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3.29.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