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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번째 편지 - 여의도 공원의 C-47 비행기



지난주 제가 아팠다는 월요편지에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셔서 월요편지를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주 병원을 다시 다녀왔고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건강해 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3월 17일 오후 여의도에 일이 있어 갔다가 시간이 조금 남아 정말 짧은 산책을 하였습니다. 장소는 여의도 공원. 예전에도 가끔 걸어본 기억은 있지만 장소 하나하나가 새롭습니다.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물이 올라갔는지 파른파른한 무엇인가가 가지마다 매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새싹인 모양입니다. 아직은 자신 있게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나지막한 꽃나무들도 안간힘을 쓰며 새싹을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줄기가 밀어내는 힘과 새싹이 밖으로 나가려는 힘이 합쳐져 높은 나무보다 연녹색의 싹들이 더 많이 고개, 아니 목까지 내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봄을 집에서 기다리다 지쳐 봄의 전령을 맞이하러 공원에 나오셨습니다. 느린 걸음으로 탐사하다 멈춰서 핸드폰으로 자연을 '부분 절취'합니다.

<한강에 돌을 던지다>라는 작품 앞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여의도는 한강의 모래섬이었고,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물가였다. 맑은 날에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던지고 비가 오면 수면에 그려지는 무수한 동그라미를 바라보았다."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산책길을 따라가니<EAT Together>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아마 도시락을 싸 와서 이곳에서 먹게 하나 봅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썼네요.

그 옆 놀이터에서는 꼬마 숙녀가 미끄럼틀 놀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엄마는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느라 또 여념이 없습니다. 인류가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즈는 '천국은 우리 주위의 유년기에 있다'고 시 <불멸의 암시>에서 노래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천국을 만나고 있습니다.

길을 돌아서니 작은 연못이 있네요. 물은 흐리지만 가만히 보니 그 연못에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햇볕을 만나려 물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연못에도 봄이 찾아온 것입니다.

연못을 보니 일본 시인 '바쇼'의 하이쿠 한편이 생각납니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봄을 이보다 더 청아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조금 지나면 이 연못에도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 소리는 봄이 활짝 열렸음을 알리는 자연의 소리입니다.

연못 옆에는 짚으로 지붕을 엮은 원두막이 있습니다. 좀 앉아 쉬어 보려 했더니 줄로 칭칭 감아 놓았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입니다. 원두막도 코로나19의 포로가 되어 버렸네요.

앗! 매화인가요. 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이 공원에서 꽃다운 꽃은 매화가 처음입니다. 저도 다가가 핸드폰에 꽃향기를 담아냅니다. 이건 뭔가요. 노란 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습니다. 산수유는 아닙니다. 팻말에 히어리 <Corylopsis coreana>라고 적혀 있습니다. 처음 보는 꽃 이름입니다.

코너를 도니 큰 동상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입니다. 1446년 9월 백성에게 반포하신 훈민정음을 펴들고 계신 모습입니다. 약간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지만 정성껏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얼른 간 길을 되돌아 공원을 빠져나옵니다. 이때 눈앞에 큰 비행기 한 대가 들어 옵니다. 여의도 공원에 세종대왕 동상도 좀 의아했는데 이 비행기는 더 이상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비행기 전시관>입니다. 그 비행기 앞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18일 새벽 중국 시안 비행장에서 비행기 한 대가 날아올랐습니다. 미군 소속 C-47 수송기입니다. 군용 수송기에는 미국 특공대와 한국광복군 특공대가 타고 있었습니다. 광복군 이범석 장군 등 7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향한 곳은 바로 이곳 여의도 비행장(지금 여의도 공원)이었습니다."

광복군이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지 못한 상태에서 사흘 전인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러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승전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기에 이 특공 작전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를 지휘한 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입니다. "광복군의 이름으로 조국에 진입하라."

"오후 2시 18분, 여의도 비행장. C-47 수송기에서 내린 광복군들이 활주로에 내려서자 일본군들이 비행기를 둘러쌌습니다. 양측은 전투태세에 들어갔습니다. 수송기를 인솔해 온 미군 책임자는 광복군의 행동을 말렸습니다."

"8월 19일 새벽 5시, 서해 바다 위 하늘. 비행기는 여의도를 떠나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광복군 특공대원들은 조국에 왔다가 다시 떠나야만 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이 영화처럼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여의도 공원은 이런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무렵의 선조들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았습니다.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살 만큼 시대 상황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1년을 사는 우리는 자신과 가족을 먼저 생각합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글이 생각납니다.

"나를 위해 산 삶과 일에는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가족과 이웃, 직장에서 만난 이들과 더불어 해온 일과 삶은 행복했다. 사회와 역사, 민족과 국가를 위해 그간 쏟아온 정성이 우리 겨레의 희망이 됐으리라 믿는다."

저 자신의 '봄 감성'을 위해 잠깐 산책을 하였지만 그 마무리는 이렇게 국가와 민족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다행입니다.

선거의 계절입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선거에 출마한 분들, 선거 운동에 관여하는 분들, 선거에 훈수를 두시는 분들, 그리고 선거를 직접 할 유권자 모두.

한 번쯤은 C-47를 타고 여의도 공항에 진입하였다가 시대 상황에 밀려 조국을 떠났던 그 특공대원들의 간절한 심정을 헤아렸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그 특공대원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졌던 찢어지는 그 처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이번 선거에 임한다면 대한민국은 또 다른 도약의 희망을 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3.2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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