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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번째 편지 - 창원의 [지성식당]과 [엠버브라운 카페]



지난주 수요일 창원지검을 방문할 일이 있어 새벽 KTX를 탔습니다. 창원지검에서 일을 마치고 나니 11시입니다. 시간은 이르지만 새벽부터 움직인 데다 아침 식사도 걸러 맛있는 점심이 그리워집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택시를 탔습니다. 몇 달 전에도 창원에 내려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갔던 가로수길로 가자고 했습니다. 가로수길에는 여러 종류의 식당이 있어 천천히 걸으며 고를 요량입니다.

같이 간 김 변호사와 가로수길 입구에서 내려 식당을 아이쇼핑합니다. 반쯤을 걸었을까요. 눈에 확 들어오는 간판이 있습니다. <지성식당, 갈치구이> 이 순간, 이것보다 더 식욕을 당기는 음식은 없습니다.

지하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서니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손님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중년 여성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댓 평 되는 작은 식당의 오래된 실내 모습만 보아도 음식을 잘할 집입니다.

"저희들 서울에서 왔습니다. 처음인데 무엇이 맛있습니까?" "당연히 갈치조림이지요. 갈치조림 2인분 드릴까에." "갈치구이는 어떤가요." "그것도 1인분 드릴까에." "예" 이렇게 메뉴는 정해졌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밑반찬과 갈치조림 냄비가 식탁 위에 올려집니다. 보기만 해도 입에서 군침이 돕니다. 무와 감자가 알맞게 익었습니다. 갈치구이도 한 접시 곁들여집니다.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밥도둑>이라 합니다.

"새로 밥을 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고실고실한 밥이 식탁 위에 올려진 순간, 다이어트라는 단어는 저만치 밀려나 버렸습니다. 오늘의 점심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밥 한 그릇을 더 먹고 싶지만 참고 또 참았습니다.

"이 근처 커피숍 어디에 가면 좋을까요. 맛있는데 하나 추천해 주세요." "요 옆에 <엠버브라운>이라는 집이 좋습니다. 가거든 지성식당에서 가라캤다 카이소." "고맙습니다."

갈치 구이집을 나서 10여 미터쯤 걸어가니 <엠버브라운> 간판이 보입니다. 들어서니 제법 널찍한 카페에 손님이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의 중년 남녀가 반가이 맞이합니다. 그런데 벽면에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림 액자입니다.

입구에 걸린 이 카페를 상징하는 액자가 눈에들어 옵니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왕이 되고 싶은 꿈…… 꿈을 꾸었으니 이미 나는 왕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든 그림의 화풍이 같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입니다. 또 다른 특이한 것은 그림에 작가가 쓴 글이 같이 쓰여 있습니다. 마치 조선조 문인화에 글을 쓰듯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글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 글에는 발길을 붙잡아 그 그림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이 생각으로, 생각이 몸으로 옮겨 다닙니다.
 


<자유, 그 진정한 가치는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여행은 내일을 꿈꾸게 한다.>

자유와 여행. 코로나 시대에 이보다 더 절박하게 우리 가슴에 다가오는 단어가 있을까요. 한평생 살면서 '서로 만나고 싶은 자유'를 박탈당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금지. 생소하고 낯선 단어가 우리 일상을 점령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여행은 언제 가보았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여행무능력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모두 여행부적격자들입니다. 여행 DNA가 다시 깨어날 그 날은 언제일까요.

그림 중에는 화가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 그림마다 화가의 단상을 적어 놓았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베네치아는 여행자의 영혼을 중독시킨다. 고독이 밀려오는 시간이면, 나는 베네치아를 그린다.> <파리는 여행자들에 의해 매일 매일을 새롭게 태어난다.>

그의 그림에서 그리운 명칭들을 발견합니다. 베네치아, 파리, 로마 깜피돌리아 언덕, 모두가 아련합니다. 화가는 특별히 꽃을 좋아하나 봅니다. 꽃을 그린 그림이 많습니다.

<작은 꿈도 따뜻한 가슴으로 품으면 아름답게 피어난다.> <나는 가끔 누군가가 그리울 때 꽃을 그린다.> <너무 깊어서 잠 못 드는 밤에는 꽃을 그린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그에게 꽃은 그냥 꽃이 아닌가 봅니다. 어느 날은 꿈이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리운 이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잠 못 드는 밤의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꽃은 사연이 있어 아름다운 모양입니다.

화가는 창작의 고통을 표현하는데 그림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입니다. 이런 글귀를 적어 두었습니다.

<나의 그림은 내 삶의 찌꺼기가 모여 화면을 만든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남과 다른 창작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 자유는 평화롭다.>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일기를 쓰듯 짧은 그림을 그린다.>

화가의 그림과 글은 결국 인생으로 귀결됩니다. 아마도 화가는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 그림을 그리는 지도 모릅니다.

<삶은 가볍게 떠나는 여행처럼 즐거워야 한다.> <삶은 가볍게 사는 것이 더 자유롭고 평화롭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날들이 많으면 밀린 일기를 쓰듯 지나간 시간을 쫓는다.>

'가볍다'는 것과 '생각한다'는 것은 양립할 수 있을까요? 생각하지 않는 것이 궁극의 가벼움 아닐까요? 그러나 화가는 가볍게 살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고독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시간이 깊어지는 곳에는 타인을 초대하지 않는다.> <고독하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타인을 초대하지 않아 그래서 가벼운 시간. 그러나 생각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시간. 그는 바로 이런 삶, 가볍지만 생각하는 삶을 꿈꾸었나 봅니다.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데 이 그림의 화가이자 엠버브라운의 주인 노충현 화백이 말을 건네옵니다. "타지에서 오셨습니까?" "예 서울에서 왔습니다. 그림이 참 좋습니다." 오늘은 우연히 행복이 얻어걸린 날입니다.

<갈치조림>과 <생각이 있는 그림>, 삶이 기대되는 것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창원 가실 일이 있으면 <지성식당>과 <엠버브라운>을 한번 들러 보십시오. 저와 같은 감성에 젖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3.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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