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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번째 편지 - 정치란 무엇일까요?



지난주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10년 넘게 4선 국회의원을 하다가 21대에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계를 은퇴한 친구였습니다. 은퇴한 후 전화로 '이제 야인으로 돌아왔으니 밥도 같이 먹고 옛날 친구로 지내자'라고 한 약속을 지키려 점심 약속을 한 것입니다.

1974년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로 만났으니 참 오래된 친구입니다. 그러나 저도 공직에 있고 그도 정치인으로 살아 언제 한번 마음 편하게 만나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아내와는 잘 지내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등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니 2시간 넘게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마음이 참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옛 친구였습니다.

저는 이야기 끝에 불편하지만, 꼭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정치를 해 보니 보람이 있더냐"라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의 정치 역정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구설도 많았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만 하면 꼭 우는데 오늘은 울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네. 초선 국회의원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 거야. 지역구 내에 있는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였지. 지역 국회의원으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아침마다 학생들이 등교할 시간에 녹색어머니회와 같이 교통 봉사활동을 시작했지. 매일 아침 나가서 1시간 정도 서 있었지. 처음에는 국회의원이 쇼를 하나보다 지역주민들이 그렇게 생각했지.

나도 그냥 시작한 일이라 얼마를 한다는 생각은 없었지. 그런데 약간의 오기가 생기더라. 정치 활동을 위한 쇼가 아니라 내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 학생들이 등교하는 날은 빠짐없이 출근하듯 그 장소로 나갔지. 하루 이틀, 점점 시간이 흘렀지.

1년이 넘으니 집사람도 그만하면 됐으니 그만하라고 하더군. 나도 솔직히 전날 늦게 잔 날은 나가기가 쉽지 않더군. 그런데 그만두면 지역 주민들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했지.

그러다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 파동으로 공천을 받지 못해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었지. 무소속으로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매일 교통 봉사활동은 계속했어.

그러던 어느 날 교통 봉사활동 현장으로 그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차 한잔하자고 하는 거야. 교감실에서 만난 교감 선생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하더군.

그 전날이 학생들 자치회인 홈룸(Homeroom) 시간이었대. 우리도 학교 다닐 때 하였던 HR 있잖아. 그런데 어느 반 HR 시간에 한 학생이 이런 제안을 하였다는 거야.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우리 학교 앞에서 교통 봉사활동을 몇 년째 하는 국회의원 아저씨가 공천을 못 받아 국회의원을 떨어지게 생겼답니다. 우리를 위해 교통 봉사활동을 해 주신 분이니 도웁시다. 엄마 아빠에게 이번 선거 때 그 아저씨를 찍으라고 설득합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지.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구나. 그 힘으로 그 선거에서 당선되었지. 그 후에도 교통 봉사활동은 계속되었지. 그리고 4년,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야.

다른 교감 선생님이 만나자고 하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였지. '4년 전에 HR에서 의원님을 돕자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임 교감 선생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또 HR 시간에 또 똑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또 울 수밖에 없었지. 이 일이 내가 12년 동안 정치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야. 그 후 나는 은퇴할 때까지 그 횡단보도를 매일 아침 지켰지."

친구의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배였고, 저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연신 손으로 눈물을 닦아 내었습니다. <정치란 무엇일까요?> 왜 이 초등학생들은 한 아저씨의 선거를 돕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려 했을까요?

<진정성>일 것입니다. 초등학생들을 위해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해진 시간에 교통 봉사활동을 하는 일. 그 일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계속'하는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가진 가치를 유권자에게 설득하여 지지를 받고 선거에 승리하여 그 가치를 실현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입니다.

정치인들은 '설득'은 말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선거 때만 되면 현란한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약속을 뱉어냅니다. 그러나 유권자는 압니다. 그 약속은 곧 식언(食言)이 될 것을.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게 됩니다. 후보자들은 우리들을 설득하려 들 것입니다. 그 후보들은 설득은 말이 아닌 <진정성>으로 하는 것임을 알까요? 초등학생들도 아는 것인데.

친구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지역구에 몇 평 안되는 작은 가게 터도 보아두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혼자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어 팔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며 늙어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음번 만남은 그곳에서 하게 되길 소망하며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2.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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