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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번째 편지 - 낯선 이웃과 소통하는 법

 

두어 달 전 층간 소음 문제로 고민하는 어느 여성분을 상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위층 소음이 하도 심각하여 막대기로 천정을 두드렸는데, 잠시 후 위층에 사는 분들과 마침 그곳에 놀러 온 분들 네다섯 명이 찾아와 험악한 인상으로 한동안 위협적인 말을 하였답니다.

그날 이후 그 여성분은 무서워 그 집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기거하고 있고 아파트 매매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정이 이에 이르자, 남편분께서 저희 사무실을 찾아 위층에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형사적 조치를 할 수 있는지 상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층간 소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접한 적은 있었지만, 막상 상담을 하고 보니 뾰족한 해결책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상황이 협박이나 폭행에 이르는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거침입도 아니라 마땅히 취할 형사조치가 없어, 층간 소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관을 안내해 드리고 상담을 마쳤습니다.

제가 피해자가 되면 어찌해야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그저 남의 일로 여기게 되었고 추가적인 고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주말 올레 TV에서 볼만한 영화를 고르다가 킬링타임용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언힌지드(Unhinged)입니다. hinge가 경첩이니 unhinged면 경첩이 떨어져 나간 상태, 즉, 불안정한, 흐트러진, 혼란함을 의미하는 형용사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그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 러셀 크로우가 모처럼 악역을 연기하였기 때문입니다. 예고편에 나오는 그의 불안정한 눈초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보복 운전을 주제로 한 스릴러입니다. 러셀 크로우는 인생이 매사 꼬인 데다가 아내까지 불륜을 저지르자 분노하여 아내와 불륜남을 죽이고 그 집을 불질러 버립니다. 그리고는 운전해서 도주합니다. 잠시 후 붉은 신호에 멈췄다가 생각에 잠겨 초록 신호에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편, 레이첼은 월요일 아침, 학교에 늦은 아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평소 다니는 노선까지 바꾸어 운전하던 중 길은 막히고 점점 스트레스가 차오르는 순간, 앞차가 초록 신호에도 움직이지 않고 정차해 있습니다.

바로 러셀 크로우의 차였습니다. 레이첼은 크게 경적을 울립니다. 러셀 크로우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그녀에게 사과하라고 정중히 요구하나 거절당합니다. 그 순간부터 이 영화는 폭력 영화로 바뀝니다.

러셀 크로우는 사과하지 않는 레이첼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친 사이코패스로 돌변하여 여러 사람을 죽이고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보복 운전이 설마 이런 정도까지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층간 소음, 보복 운전. 모두 <낯선 이웃>과의 갈등을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들입니다.

이 <낯선 이웃>은 근대의 상징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근대의 한 속성인 <대도시>의 상징입니다.

시골에서는 서로 누구인지 잘 알고 삽니다. 상점 주인은 외상 하려는 아이가 누구네 집 아들인지 잘 압니다. 그래서 외상이 가능합니다. 즉, 시골에서는 <인격적 만남>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편의점 점원과 손님 사이에는 돈과 상품만 오고 갈 뿐 인격적 만남이 없습니다. 이를 <비인격적 만남>이라고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규정합니다.

대도시에서의 삶의 조건은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입니다. 그래서 대도시에서는 <타인과의 소통>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다고 철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층간 소음, 보복 운전은 모두 타인과의 소통 부재에서 발생하는 병리적 현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얼마 전 이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집에 들어가려는데 현관문에 테이프로 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친절한 배달원이 붙여 놓은 카드려니 하고 떼어 읽어 보니 상상하지 못한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2402호입니다. 댁네 주방 쪽 공간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상당히 크게 저희 집으로 유입되고 있어 불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 한번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집인 2502호 바로 아래층에 사는 분들이 붙여 놓고 간 카드였습니다. 그런데 그 카드에는 소음방지용 가구 발 쿠션 세트가 두 개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너무 미안했습니다.

만약 경비실을 통해 항의하였거나, 우르르 올라와 항의하였다면 미안한 마음보다 반발하는 감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정말 점잖은 방법을 선택하여 저희를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케이크를 만들어 2402호를 방문하였습니다. 2402호에서는 그 케이크를 받고 오히려 미안해하였습니다. <낯선 이웃>이 <인격적 만남>을 하는 순간입니다.

'낯선 이웃, 즉 타자와 어떻게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라는 테카르트 이후 지금까지 지속된 서양철학의 속앓이입니다. 그러나 그 해법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그것 하나면 족했습니다.

여러분은 낯선 이웃과 어떻게 소통하고 계시는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11.0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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