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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번째 편지 - 행복의 비브라토 덕분에 행복했던 시간들

 

이번 주 월요편지는 지난주 월요편지의 연장선입니다. 지난 금요일 10월 16일 드디어 <행복의 비브라토>가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부산을 찾았습니다. 부산역에서 금정문화회관까지는 평소 30분 거리가 1시간 반이나 걸려 오후 5시반경 도착했습니다. 오충근 감독 부부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안내로 들어선 곳은 개인 분장실이었습니다.

<특별손님 조근호>라는 팻말이 오늘의 상황을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준비해 간 턱시도로 갈아입고 강의안이 적힌 큐카드를 여러 번 보면서 긴장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데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오충근 감독의 브니엘 고등학교 은사라는 분이 오 감독의 안내로 방을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오 감독의 초대로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40년 만에 만난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콘서트에 오신 것은 월요편지의 팬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러 일부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선물로 CD도 만들어 오셨습니다. <조근호의 '내가 슬플 때 듣는 음악'>, 제가 같은 제목으로 월요편지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음악 전부를 CD 2개로 만들어 오셨습니다.

저는 많은 부담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분이 월요편지를 응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저의 어깨를 무겁게 했습니다. 무대에서 뵙겠다고 예를 다해 정중히 인사드렸습니다.

콘서트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무대와 백스테이지가 궁금하여 분위기도 익힐 겸 가보았습니다. 연주자들의 의자 앞에 각종 악기와 악보가 정렬되어 있는 텅 빈 무대는 어디선가 선율이 흘러나와야만 할 것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백스테이지는 예상대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각자 자신들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진행 책임자는 무전기를 들고 어딘가와 열심히 교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오늘만큼은 관계자였습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곡이 연주되고 오 감독의 소개로 저는 무대로 걸어 나갔습니다. 4번의 토크 중 첫 번째 였습니다. 능수능란한 오 감독의 질문에 맞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 변호사님은 저의 유치원, 초등학교 1년 선배이십니다. 저희가 같이 다닌 유치원은 국화유치원이라는 곳이었는데 원감이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의 어머니이고, 남편은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조 변호사님은 유치원에서 그 남편분에게 바이올린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계속하셨으면 이 무대에서 만날 수도 있었겠습니다."

"아픈 추억을 끄집어내셨네요. 저는 일찍 유치원에 들어가 2년을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바이올린을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호는 소질이 없으니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님은 화를 내셨지만, 그 선생님은 정확한 판단을 하신 것이지요. 저는 음치입니다."

오 감독께서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악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여러분, 오늘 공연의 제목이 행복의 비브라토입니다. 바이브레이션이죠. 음에서 비브라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어떤지 악장께서 몇 음만 비교해서 연주해 주세요."

비교해서 들어보니 비브라토가 있는 음이 확실히 풍부하였습니다.

"행복에도 비브라토가 있어야 합니다. 떨림이죠. 그래서 오늘 콘서트의 주제를 행복의 비브라토, 행복의 떨림으로 정했습니다. 아마도 조 변호사님께서 이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공연이 계속되었습니다. 모두 4번 토크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네 번째 토크는 오 감독과 함께 하고 세 번째는 단독으로 10여 분 이상 관객들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다행히 지난주 월요편지에서 이야기한 행복의 3대 요소 Virtue(미덕, 보람), Pleasure(쾌락, 즐거움), Joy(환희, 기쁨)에 대하여 관객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저는 미덕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저는 미덕 달성 기계가 되어버렸더군요.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가 나타납니다. 끝이 없습니다. 지치고 맙니다.

그래서 쾌락에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쾌락은 중독되기 쉽습니다. 저는 쾌락 탐닉 기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미덕도 쾌락도 저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인생>이란 제가 <'미덕'이라는 이름의 '경주마'>와 <'쾌락'이라는 이름의 '야생마'>가 이끄는 <마차>에 타고 있는 것입니다. 경주마는 너무 잘 달립니다. 끝이 없죠. 그래서 힘듭니다. 야생마는 자주 길을 이탈합니다. 위험합니다.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제 손에 경주마와 야생마를 컨트롤할 고삐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고삐>의 이름은 <환희>입니다. 미덕도, 쾌락도, 환희가 컨트롤하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마차는 너무 빠르거나, 길을 잃곤 합니다.

인생 마차는 어떤 때는 경주마가 앞장서 빨리 달려야 하지만, 가끔은 환희 고삐로 제동을 걸어 주어야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야생마가 힘이 좋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길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가끔은 좋지만, 너무 오래 그러면 길을 잃지요. 환희 고삐가 제 길로 인도합니다.

이제 제 인생에서 미덕과 쾌락을 조정할 환희 고삐를 거머쥐어야 할 순간이 온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모든 일에서 환희, 즉, 기쁨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렵니다. 저는 기쁨이 살고 있는 저의 가슴을 믿으니까요."

몇 달 동안 이 콘서트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제 이름을 건 강의면 실수해도 그만이지만 오충근 감독의 이름을 건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니 잘해야 합니다. 남의 잔치를 망치면 안 되니까요.

끝나자 다행히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모든 분들이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간의 고생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새벽 1시 반에 서울역에 도착하였지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오충근 감독의 은사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조 변호사님의 강의와 잘 어우러진 <행복의 비브라토> 좋았습니다. 조 변호사님을 뵐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평소 행복론에 많은 관심을 가진 변호사님의 이론과 예시가 적절한 강의이어서 관객 입장에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의 비브라토 덕분에 저도 몇 달 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오충근 감독께 이런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10.1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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