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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번째 편지 - 토크 콘서트 [행복의 비브라토]

 

지난주는 월요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어 사회 전체가 얼어붙고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공포심이 깃드는 이 시점에 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어떤 글도 성가심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걱정이 맞물려 제 펜이 멈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요즘 시대적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행복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9월 19일 오후 5시 부산에 있는 금정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금정문화회관 개관 20돌 기획공연으로 열리는 오충근의 고고한 콘서트 <행복의 비브라토>에 토크 손님으로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향이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녔습니다. 그 초등학교가 금정구에 있는 동래초등학교입니다. 명지휘자 오충근 선생님은 그 초등학교 1년 후배입니다. 제가 부산고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우연히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충근 선생님은 2015년부터 철학자 최진석 선생님과 <노자와 베토벤>이라는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형식은 음악을 한 곡 연주하고 10여 분간 토크를 하고 또 음악을 연주하고 토크를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퍽 신선한 발상이고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토크 콘서트의 버전 2를 저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주제는 <행복>이었습니다. 여러 번 사양하였습니다. 저는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우리나라 노자 철학의 대가인 최진석 교수님과 같이하던 콘서트의 품격을 떨어트릴까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충근 선생님의 강권에 못 이기어 얼떨결에 약속하였고 그 첫 번째 공연이 지난 5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연은 코로나19 때문에 일찌감치 취소되었고 이번에 연기된 공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연주될 곡은 모두 4곡으로 1.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 작품 96>, 2. 패리시 알바스의 <하프 협주곡 g단조 작품 81>, 3. 차이콥스키의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 4.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 92>입니다.

고전음악에 문외한인 저는 매일 이 4곡을 들으며 대화 주제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혼돈과 고통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프랑스 혁명 직후의 상황에 주목하였고 그 시대의 인물을 추적하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2년 후인 1791년 8월, 22세의 한 프랑스 젊은이가 리옹 아카데미가 후원하는 수필 콘테스트에 참가합니다. 주어진 주제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감이 잡힐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엉클어진 시대,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행복을 이야기한다면 무엇을 이야기하여야 할까요? 제가 콘서트에서 이야기할 주제와 수필 콘테스트 주제는 정확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 프랑스 젊은이는 수필에서 불행의 시기에 인간에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는 그 <위안의 동인(動因)>인 '감정'을 배양하자고 강조합니다.

그는 먼저 몽블랑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바라보며 첫 빛줄기를 가슴으로 맞으라고 제안합니다. 노을 진 바닷가를 거닐며 그 거대한 태양이 자신의 가슴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을 해보라고도 합니다.

시골길을 거닐며 우주의 침묵에 귀를 기울여 보고, 양치기 오두막의 모닥불 앞에서 잠자면서, 자연의 기원에 대해 사색도 하라고 권합니다.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앞에 앉아 '밤의 암흑'이 '아침의 여명'에 길을 내주는 것을 목격해 보라고도 합니다.

그 젊은이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말을 남긴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젊은 날,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의 소리, 자연의 음악에 의도적으로 몰입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1802년 10월 10일, 32세의 한 독일 젊은이가 삶이 고통스러워 유서를 씁니다.

"오 신이여, 적어도 단 하루 만이라도 기쁨으로 충만한 날을 주소서, 내 안에서 진정한 기쁨이 메아리친 지가 너무도 오래되었나이다. 오, 언제, 오, 신이여, 자연과 인간의 전당에서 다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요? 안돼요. 오, 그러면 너무도 힘듭니다."

그러나 그는 그 유서를 쓰고 삶의 의지를 살려냅니다. 그리고 25년 동안 수많은 명곡을 작곡합니다. 그는 음악의 성인 베토벤입니다. 청력 상실이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음악으로 환희를 이야기합니다.

바그너는 <베토벤>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단지 이 거룩한 교향곡들의 몇 소절을 듣기만 하면 누구든지 온통 절망스럽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혼돈의 세계가 저절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다." 음악이 그 시대 절망의 탈출구였던 것입니다.

혼돈의 시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폴레옹은 자연의 음악에서, 베토벤은 인간의 음악에서 그 탈출구를 찾았습니다.

2020년 9월 19일 <행복의 비브라토>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어떤 위로를 할까요? 행복을 증가시키지는 못해도 고통을 감소시키는 역할은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음악은 즐거운 이의 친구이지만 언제나 고통스러운 이들의 벗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이 <행복의 비브라토>를 준비하는 저에게 용기를 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8.3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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