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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번째 편지 - 포기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

 

저에게는 오래된 밴이 하나 있습니다. 10년 전 변호사가 되던 해에 후배가 오래 탄 밴이라며 중고로 팔아도 얼마 못 받으니 혹시 쓰겠냐고 해서 공짜로 생긴 밴입니다. 그러나 겉은 멀쩡했습니다.

그 밴과 햇수로 10년을 같이 지냈습니다. 1년에 몇 번 사용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요긴하게 사용해왔습니다. 출고된 지 20년 이상 된 차라 잔고장이 많습니다. 차는 공짜로 받았지만 수리비는 꽤 들었습니다.

특히, 이런 여름철이면 에어컨이 잘 나오지 않아 애를 먹곤 합니다. 이젠 이 밴과 작별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밴을 관리해온 분들이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차 엔진 하나는 정말 새것 같습니다. 얼마 운행하지도 않았고요. 10년은 더 타실 수 있습니다."

그런 밴에 대해 몇 주 전 제 운전을 도와주는 임덕진 차장이 드디어 폐차를 권고하고 나섰습니다. "대표님, 밴의 오일이 너무 샙니다. 원인은 부품이 삭았기 때문인데 출고된 지 오래된 차라 그 부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여러 군데 알아보았지만 국내에는 부품이 없다고 합니다."

에어컨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차가운 바람이 나오지 않아 여러 번 수리를 맡겼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하여 미지근한 바람으로 여름을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차라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차량 부품이 없다고 하니 오래전 스페인 유학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1992년 유학을 가서 차를 살 때 같은 가격에 작은 신차를 살지 좀 큰 중고차를 살지 기로에 놓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푸조 308 빨간색 차였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걸핏하면 고장이 났습니다. 저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푸조 정비공장에 수리를 맡기지 않고 동료 유학생이 소개해 준 동네 정비소에 맡겼습니다.

수리하고 나면 얼마간은 굴러가다가 두 달쯤 되면 꼭 고장이 났습니다. 한번은 스페인 북쪽으로 캠핑을 갔다가 캠핑장에서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1시간 떨어진 정비소에서 수리공을 불러가 고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고치긴 하였는데 수리공은 시동이 꺼지면 다시 시동을 걸 수 없으니 목적지까지 시동을 끄지 말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목적지까지 5시간을 휴게소에서도 시동을 끄지 못하고 운전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정비소에 가서 사장 호세에게 왜 이렇게 수리를 해도 고장이 잦은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실은 푸조 308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 비슷한 차량 부품을 사용했는데 그 때문인 모양입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그런 편법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부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절차는 복잡하겠지만 밴을 생산한 쉐보레 본사에 확인해 볼 수도 있고, 중고품 거래 매장인 이베이를 이용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 부품을 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임 차장에게 다시 한번 여기저기 좀 알아본 다음 그래도 고칠 수 없으면 폐차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후인 얼마 전 임 차장이 뜻밖의 보고를 해왔습니다.

"대표님, 밴을 고칠 수 있다는 데를 찾았습니다. 내일 밴을 가져다주면 고칠 수 있는지 확답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잘 되었네요. 고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좀 오래되었지만 급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데 몇 년 더 타면 좋지요. 1년에 몇 번 쓰지도 않는데 새 밴을 사기도 좀 그렇고."

그리고 후속 보고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고칠 수 있답니다. 에어컨까지 같이 수리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어진 이삼일 후 보고입니다. "수리 마쳤습니다. 에어컨도 고쳤습니다. 에어컨 콤프레샤 밸브에 문제가 있었답니다. 이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거의 새 차 같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사망 선고를 받기 직전이었는데 새 차 같아지다니. 수리비는 제법 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들었나요. 꽤 들었지요."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30만 원입니다."

20년 이상 된 밴 부활 비용이 불과 30만 원이라니. 저는 임 차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임 차장, 오늘의 경험을 평생 기억하세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마세요.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 문제를 풀어줄 사람이 있습니다. 임 차장이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동안 살면서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 왔지만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나름대로 애를 쓰다가 난관을 뚫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면 호세처럼 편법을 쓰거나 임 차장처럼 포기해 왔습니다.

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사람들은 그 난관을 넘지 못할 벽으로 생각하지 않고 넘을 수 있는 허들로 생각하였기에 가능하였다는 것을 책을 통해 수없이 듣고 배웠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번에 작은 일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법을 찾으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임 차장이나 저에게 이번 일은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래 세상 어딘가에는 이 문제 푸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야.'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6.2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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