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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번째 편지 - [철학의 위안]과 [더 해빙]

 

코로나 19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유명을 달리 한 분도 많고, 삶의 터전을 잃은 분도 많습니다. 재산이 줄어든 분도 허다합니다. 코로나 19 이전이나 이후나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 원인과 대응책이 궁금해집니다.

저는 오래된 고전 한 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480년부터 524년까지 살다가 옥사한 로마의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입니다. 이 책은 실의에 빠진 보에티우스에게 [철학의 여신]이 나타나 그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내용입니다.

"나의 몰락은 나의 발판이 얼마나 확고하지 못한 것이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감옥에 있는 보에티우스의 탄식입니다.

여신은 운명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만일 네가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려고 애쓴다면 너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 될 것이다."

여신은 우리가 가졌던 재산, 권력, 명예, 쾌락 등 모든 좋은 것을 [행운]이라고 통칭하고 그 행운이 [허망하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행운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것이다.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행운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이겠지만 행운이 살며시 빠져나가려고 할 때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운명의 여신에게 그토록 갈구하는 행운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철학의 여신은 행운의 불완전성을 멋진 표현으로 하나하나 입증해 보입니다.

먼저 재물입니다. "네가 재물을 얻게 되면 그 재물들은 다시는 너를 평온한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권력입니다. "고위관직이 사악한 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질 때마다 그 재앙은 항상 홍수나 화산폭발보다 컸다." 명예에 대해서도 한마디 합니다. "너희의 명성이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된다 하더라도 무한한 영원에 비하면 그것은 짧기 보다는 오히려 무(無)인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위안하기 위해서인지 철학의 여신 입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행운보다 불운이 인간에게 더 유익하다. 행운은 인간을 속이지만 불운은 인간을 깨쳐 준다."

보에티우스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런 [거짓된 행복]이 아니라 [완전한 행복]이라고 단언합니다. 그 완전한 행복은 [완전한 행복으로 충만해 있는 신]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보에티우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 것입니다. 행운을 거짓 행복이라 규정짓고 철학과 신학의 경계에 있는 완전한 행복을 상상하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위안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보에티우스가 거짓 행복이라 규정한 그 행운을 추구하고 그 행운이 코로나 19로 사라져 버린 지금 어떻게 해서든지 그 행운을 다시 찾으려고 애씁니다. 최근 서점가에 그 행운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책이 등장하여 코로나 19 피해자들을 위안하고 있습니다.

The Having(더 해빙)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작가 홍주연이 대한민국 상위 0.01%가 찾은 [행운의 여신] 이서윤을 만나 부자가 되는 법을 깨달아 가는 내용입니다. [철학의 위안]과 형식이 유사합니다.

[행운의 여신]은 부자가 되는 길은 너무도 쉽다며 [Having]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킵니다. "Having은 돈을 쓰는 순간 '가지고 있음'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이에요. 그럼 '있음'에 초점을 맞추고 홍 기자님이 가진 물건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세요."

평소에 전혀 의식하고 지내지 않던 일상용품 하나하나에 '있음'이라는 감정을 부여하니 홍 기자는 기쁨과 감사가 온몸에서 느껴진다고 고백합니다. "같은 물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네요."

[철학의 여신]은 운명에 복종하라고 말한 반면, [행운의 여신]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스스로 바꿔 갈 수 있어요.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존재니까요."

1,500년의 세월이 사람을 [운명에 복종하는 존재]에서 [운명을 창조하는 존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철학의 위안]을 읽을 때는 운명 앞에 굴복하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었다가 [더 해빙]을 읽을 때에서는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존재로 변신합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감옥에 갇혀 [철학의 위안]을 쓴 보에티우스와 외국을 여행하며 [더 해빙]을 쓴 홍주연은 1,500년의 간격만큼이나 공간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부를 대하는 태도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행운의 여신]은 자기계발 방법론을 총동원하여 Having을 설명합니다.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듣던 내용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더 해빙]의 페이지를 메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뻔한 내용이 뻔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더 해빙]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질 수 있는 운이 있어요." 빠르면 2주, 늦어도 3개월이면 Having의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하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그게 Having의 첫걸음이에요." "진짜 부자들은 같은 노력을 투입해도 돈을 더 많이 끌어당기는 방법을 알죠. 즉, 효율성의 문제란 거예요." "Having의 핵심은 편안함이죠."

여신은 방법으로 [Having 신호등]과 [Having 일기]를 제안합니다.

Having 신호등은 물건을 구입할 때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긴장과 불편함이 느껴지면 빨간불이니 구입을 멈추고,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느껴지면 초록불이니 구입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Having 노트는 "'I have'로 지금 자신에게 있는 것을 적고 'I feel'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기를 일주일에 서너 번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해빙]이 기존 자기계발서와 다른 대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더 해빙은 이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은 '결핍'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 불편함이 돈을 밀어내고 무의식에 '없음'을 끊임없이 입력할 거예요. 결국 Having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죠."

Having은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과 유사해 보입니다. 감사의 힘은 자기계발의 큰 주제 중 하나입니다. 자기계발서는 표현을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통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Having의 파워를 가장 확실하게 증폭시키는 방법이 있죠. '있음'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이 나를 채우고 넘쳐서 상생의 마음이 되는 거예요. 좋은 인연에 투자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것처럼 "있음"을 확실히 새기는 방법도 없거든요." 결론은 인연과 상생입니다.

보에티우스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그 행운이라는 것은 거짓 행복이고 완전한 행복은 신에게 있다고 결론지은 반면, 홍주연은 그 행운을 잡아야 한다고 정면 도전하면서, 그 방법으로 가진 것에 감사함, 좋은 인연, 상생의 마음을 모두 포함한 Hav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책은 시간과 공간을 반영합니다. 1500년 전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보에티우스가 발견한 [철학의 위안]이 2020년 코로나 19로 위안이 필요한 우리의 가슴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운명을 창조하고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Having을 제시한 [더 해빙]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6.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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