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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번째 편지 - 사랑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

 

"여보, 요즘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이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당신은 먼저 자요. 나는 이 드라마 보고 잘 테니."

지난 4월 중순 어느 토요일 아내는 이 드라마 지난 회 총 8편을 몰아치기로 보느라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그 다음 주 토요일 저는 아내와 똑같은 짓을 하며 오랜만에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뒤늦게 입문한 드라마가 지난 토요일 16회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바로 장안의 화제 드라마 [부부의 세계]입니다. 시청률 28%까지 끌어 올린 히트작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드라마 주제는 불륜입니다. 불륜 주제 드라마는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반복 제작되어 인기를 끕니다.

이 드라마는 영국 BBC One에서 2015년 9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방영된 [닥터 포스터] 10부작을 리메이크한 드라마입니다. 영국에서 시청자 1,000만 명을 돌파한 화제작입니다.

완벽한 주부이자 능력 있는 가정사랑병원의 부원장 [지선우], 완벽함이 좋아 지선우와 결혼했지만, 점점 그 완벽함에 질려 지선우의 대용품을 찾아 불륜을 저지르는 영화감독 [이태오], 그 부부사이에 나타나 파란을 일으킨 사업가의 무남독녀인 불륜녀 [여다경]이 벌이는 드라마입니다.

불륜 드라마는 늘 결혼이 무엇인지, 부부가 무엇인지, 그 시작이 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집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그럴듯한 사랑의 정의는 강신주의 책 [감정수업]에 나오는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이를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합니다.

이 드라마는 [지선우]와 [이태오]가 이혼하기까지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전반부와 [이태오]가 이혼하고 [여다경]과 결혼한 이후 [지선우]와 [이태오]가 서로 아들 [이준영]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지킨다]는 표현이었습니다. 내 남자, 내 가정, 내 직장. [지선우]에게는 지킬 것이 많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지켜내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젊고 예쁜 여자 [여다경]의 등장으로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아들마저 떠난 후 [지선우]는 독백합니다. "내가 지키려는 것마다 왜 잘못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선배 의사가 이렇게 조언합니다. "지킨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집착이지. 집착은 독이야."

이 대목에서 섬뜩하였습니다. 저도 평생 무엇인가를 지키려 살았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고 지위를 지키고 인간관계를 지키고, 늘 [지키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지키는 것은 내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저는 [제가 원하는 아내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아내에게 갖가지 요구를 하였습니다. 워킹도, 메이크업도, 옷 잘 입는 법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읽을 책도 추천하였고요. 아내는 힘들어하였고 그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결국 제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유치한 짓인지 알게 된 것은 세월이 많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 후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삶을 살아오다가 최근 몇 년 아내가 겨울만 되면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원을 수없이 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고 겨울마다 아내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금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저녁 약속이 사라져 제가 아내 옆을 지켜 줄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다는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 하자고 하였습니다. 아침이면 억지로 깨워 같이 산책도 하고, 저녁에는 일찍 퇴근해 같이 식사하고, 주말이면 드라이브도 하였습니다. 병원도 같이 다녔지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한 일은 아내를 [옆에서 지켜주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하지 않던 일을 지난 3개월 동안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5월 1일이 되자 아내는 언제 그랬냐 싶게 여중 2학년생으로 돌아왔습니다. 잔소리도 심해지고 시키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자신이 마지막까지 그토록 지키려 하였던 외아들 [이준영]이 아버지 [이태오]에게 가겠다고 하자 그때 드디어 [지킨다]는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아들과 비록 같이 있지 못하더라도 아들의 행복을 위해 보내 줍니다.

그 이후 [부부의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은 [내가 너를 지켜줄게] 입니다. [부부의 세계] 후반부는 새로 꾸린 가정을 지키려는 [여다경]과 아들을 지켜주려는 [지선우]의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사랑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막을 내립니다. [지키려 하였던] 이태오, 여다경은 원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였고, [지켜주려 하였던] 지선우는 그 뜻을 이룹니다.

[지킨다]는 말은 자기중심입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다릅니다. 그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득이 없을지라도 그를 위해 지켜주는 것입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녀를 지켜준다는 의미입니다. 설령 그녀가 배신하더라도 말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녀가 기쁘게 할 때나 슬프게 할 때나 자녀를 지켜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친구를 사랑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는 나에게 우정을 보일 때만 내가 그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우정에는 나의 이해관계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나의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말을 사용할 때는 나의 이해관계를 넘어, 나를 위해서 그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그를 지켜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기대치가 다릅니다. 그러나 사랑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번역한다면 배우자에 대한 행동이 달라질 것입니다.

부부의 세계는 사랑이 [지키는 것]인 줄 알았던 주인공들이 사랑은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옆에 있는 사람을 [지키고] 계신가요? [지켜주고] 계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5.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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