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615번째 편지 - 코로나19가 던진 사회적 관계의 '자기절제' 문제

 

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전에 읽은 책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대니얼 액스트 Danial Akst'가 금융위기를 겪은 직후인 2011년에 쓴 [We have met the enemy]입니다. 한국말로 번역될 때는 부제 'Self-control in an age of excess'에서 착안하여 [자기 절제 사회]라고 책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책은 아미시 공동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미시 공동체에서는 현대사회가 제기하는 덫 대부분을 피한다.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거나 키운다. 풍요가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미시 사람들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은 없었으며, 전통적으로 '검소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진 그들만큼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이도 없다."

그러나 그들도 2007년부터 풍요를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흔들리게 됩니다.

"전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의 경제 위기가 올 때까지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이 넘쳐나는 돈을 마음껏 써 댔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으면 대출은 쉬워지고 만족을 미루는 것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신용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용은 문명의 생명선이며 혁신과 번영을 촉구하여 문명을 뒷받침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신용이 투자보다는 소비를 위해 사용될 때 우리는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미래를 희생하여 현재를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투자와 소비의 원천이 되는 돈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저자는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합니다.

"돈을 벌 때만큼 인간이 순수하게 몰두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직장은 절제와 통제의 요새가 되었다. 오늘날 회사는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한 자제력을 요구한다. 우리는 일을 할 때 감정을 통제하여야 한다."

이렇게 절제를 강요받던 개인은 회사에서 퇴근하면 전혀 다른 유혹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시스템은 우리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기 시작한다. '긴장을 풀어' '사고, 먹고, 잠자리를 같이하라고.'"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도처에서 광고는 우리의 소비를 부추깁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인류를 봉건적 삶에서 탈피하여 풍요롭게 사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문제는 [자기절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소비 광풍을 잠재우거나 최소한 다른 곳으로 돌릴 어느 정도의 윤리적, 문화적 토대 없이는 번성할 수 없다. 자제력을 발휘하는 노동자들을 양성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주저함을 덜어 주는 것이 자본주의 근본적인 모순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 모순을 이해했으며, 자기 절제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저자는 미국에서 [낭비]가 [검소함]을 대체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추적합니다. 그는 미국이 가난한 나라에서 욕망의 나라로 탈바꿈하던 1880년대에서 1920년대의 사이로 보았습니다.

"거침없는 경제성장은 자제심과 과묵함이라는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의 덕목에 타격을 입한 반면, 상인 계층의 부상은 오랫동안 몸에 밴, 사치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바꿔 놓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부터 1998년 IMF 시대까지의 대한민국 상황과 판박이입니다. 저자는 대공항이 검소함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결론 짓습니다.

"성장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소비라고 여긴 경제학자 케인즈에게 검소함은 적이었다. 대공항이라는 위기에 대한 케인즈의 처방은 정부 지출을 늘려 개인 지출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케인즈의 말이 맞았다."

이 처방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이 처방이 등장하였고 현재의 코로나19 사태에도 이 처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 대통령 두 사람을 등장 시켜 [자기절제]와 [소비유혹]을 상징적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자기절제의 화신과도 같았고 욕망을 마음속에 가둬 두었다. 카터는 사치와 불만에 대해 유권자를 꾸짖었다. 반면, 레이건에게 물질적인 욕구는 수치스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매우 타당하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미국은 카터를 버리고 레이건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결과 검소함의 문화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낭비의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 현상은 2008년 금융위기까지 초래하기에 이릅니다.

"최근 금융위기가 닥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이번 위기가 자제력 측면에서 엄청난 규모의 실패를 나타내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를 분석한 책인 만큼 여기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적을 만났고, 그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바로 We have met the enemy입니다.

이번 코로나19는 자제력 실패로 빚어진 재앙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자기절제]라는 명제를 생각할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 왔는지, 그 관계가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고, 그런 복잡하고 부산한 사회적 관계없이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기절제]를 숙고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이론은 소비지상주의를 지위와 과시의 측면에서 설명하면서 [소비]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헛된 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소비]라는 단어 대신에 [사회적 관계]를 넣으면 그 느낌이 어떠신가요?

만약 우리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기절제를 고민하고, 그 결과 사회적 관계가 적절한 수준으로 절제되고 통제된다면 대한민국은 과거와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것이고 삶의 다른 부문에서도 새로운 양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끈 힘이 [사회적 관계의 풍요와 과잉]이었다면 코로나19는 대한민국에 [사회적 관계의 절제와 통제]를 화두로 던질 것입니다. 개인, 조직, 사회, 국가 차원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화두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4.20.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