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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번째 편지 - 본의 아니게 [바이오 해커]가 되다

 

요즘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은 한결같이 "건강은 어때요"하고 물어보십니다. 아마 제가 두어 달 전에 쓴 [인슐린 저항증]으로 고생한다는 월요편지를 보고 제 안부를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건강에 관한 월요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건강은 놀랄 만큼 좋아졌습니다. 아니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문제점은 월요편지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는데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식후에 음식을 통해 혈관에 들어간 혈당을 적절히 세포 속에 넣어주어 혈관 속 혈당량을 적절히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하는 인슐린이 제때 나와야 하는데 1시간 뒤늦게 나오는 데다가 혈당을 세포에 넣어주는 인슐린의 기능이 매우 저하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의 치료법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먹는 것을 바꾸어 혈당이 오를 만한 음식은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어떤 음식이 혈당을 올리는지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GI 지수, GL 지수 같은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로 단백질과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은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쉽지 이런 다이어트식 관리가 얼마나 힘든지는 혹시 당뇨를 앓고 있는 분들은 너무나도 실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그 음식이 혈당을 얼마나 올리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혈당계를 사용하여 그때그때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측정하면 되지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해법은 혈당을 적게 올리는 음식을 먹는 것이고, 어느 음식이 그런 음식인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책도 읽어 보고 인터넷도 뒤지고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라, 어떤 음식은 안된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먹는 순서가 더 중요하다, 각종 지식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더 나빠질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식후에 까무러치는 빈도는 점점 늘고 병원은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이런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CGM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CGM은 Continuous Glucose Monitoring 연속혈당측정기입니다. 혈당 측정은 채혈을 통해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이 환자에게 너무나도 불편하여 바이오 업체에서 채혈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오랫동안 연구하였답니다.

그 결과 복부 피하 부분에 작은 센서를 장착하고 그 위에 전용 송신기를 부착하여 혈당 수치를 핸드폰에 송신되게 만든 기기가 몇 년 전에 출시되었습니다. 이를 CGM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5분 간격으로 혈당 수치를 알려 줍니다. 그러니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이 혈당치를 얼마나 올려 주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기기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기기가 소아 당뇨환자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성인 당뇨환자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성인 당뇨환자 중 이를 장착하여 실시간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용을 따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나빠진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연속혈당측정기가 너무나도 절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대로 이를 부착할 수는 없어 삼성서울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께 상의 드렸더니 좋은 방법이라면 시도해 보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기를 해당 수입업체를 통해 구입하고 사용법도 경기도 판교까지 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기기 사용하는데 뭐 이리 복잡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목마른 사람이 샘 파는 법 아닙니까. 장착하고 첫 혈당 수치가 핸드폰으로 송신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몸에 있는 혈당이 실시간으로 측정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5분마다 수치가 바뀌고 그래프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기기를 사용한 지 2개월이 넘었습니다. 그간 무수히 많은 실험이 있어 어느 정도 데이터가 축적되었습니다. 뭐를 먹으면 혈당이 급상승하고 뭐를 먹으면 혈당에 큰 변화가 없는지 대충의 트렌드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데이터가 개인차가 있는지 알 수 없어 공개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상식과 다른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혈당치를 140부터 70까지 정해 놓고 그 이상이나 그 이하가 될 때는 경고음이 울리게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먹었을 때 그것이 혈당을 지나치게 올리면 저절로 알게 되어 다음에는 피하게 됩니다.

혈당치가 급격히 올라간 사례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체리가 맛있어 보여 한 대접쯤 먹었더니 190 가까이 올라가 놀란 적이 있습니다. 집에 다시마 부각이 있어 다시마는 혈당과 무관하니까 먹어도 좋으려니 하고 한 대접쯤 먹었더니 180까지 올라갔습니다. 쌀강정 대여섯 개가 혈당을 200까지 올린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아이스크림은 의외로 혈당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청량음료는 액상과당 때문인지 모두 혈당을 급격히 끌어올렸습니다. 당뇨 책이나 유튜브 모두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서로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똑같은 음식을 순서를 바꾸어 실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결론은 단백질과 지방을 먼저 먹고 탄수화물을 나중에 먹는 것이 혈당 안정화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혈당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위에 많은 분들에게 설명하였고 특히 당뇨병을 앓고 있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이 CGM을 사용해보라고 권하였지만 거의 모두 무관심하였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건강에 관한 개인적인 기호는 다르니까 그러려니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뇨병 초기인 후배 교수에게 CGM 이야기를 하였더니 반색을 하며 자신도 착용하고 싶다며 어느 제품인지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형님,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건강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해킹이라는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해킹은 컴퓨터 네트워크의 보안상 취약점을 찾아내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해킹의 기본 개념을 인체에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컴퓨터 해커들이 시스템을 해킹하듯이, 우리 몸을 구석구석 파악하고 면밀하게 분석하며 수치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행위를 [바이오 해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이오 해커들 중에 고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행위가 CGM 착용이랍니다. 형님은 이미 바이오 해커 고수이십니다."

저도 모르게 바이오 해커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의 [The Practice of Management] 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 측정할 수 있어야 관리할 수 있다" 연속혈당측정 이후 식사 후 까무러치는 상황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관리할 문제가 있으신가요? 측정이 답일지 모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8.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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