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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째 편지 - 가을 시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시지요

가을 시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시지요.


  아침 출근하는 길에 2층 현관에 놓인 국화 화분을 보고는 정말 만추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가을에 피는 꽃이 제법 여러 가지 있을 터인데 우리 기억 속에는 가을 꽃 하면 국화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요. 그리고는 이어 이 시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는 무서리가 저리도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너무도 유명한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 입니다. 옛날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어 외우느라 고생을 한 시이기도 하고 그 덕분에 지금도 한두 소절은 암송이 가능하지요. 여러분은 이제 고등학생이 아니시니 시험을 의식하지 말고 편한 마음에 다시 한번 읽어 보시지요. 정말 멋있는 시입니다. 

기왕 여러분을 고등학교 시절로 안내했으니 오늘은 우리의 열일곱 시절, 우리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무작정 외우던 그 시를 편안한 마음으로 가을의 정취와 함께 음미해 보실 시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의 세대가 다양하여 제 기준으로만 시를 고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지만 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고등학교를 다니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시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혹시 이 시를 처음 접하신 분들도 전혀 걱정하실 염려 없습니다. 처음 읽으셔도 너무 좋은 시니까요. 

여러분, 교과서에 이런 시가 있었습니다. 미국 시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이라는 인생을 관조한 시입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 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여러분 기억이 나십니까. 모든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 열일곱 시절, 당시 이 시는 저에게 너무도 무겁게 다가 왔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더 아름다운 꽃이 있으면 얼마나 아쉬울까, 더 멋진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나 후회스러울까. 1974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직전에 문과 이과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수학을 좋아하였고 장래에 퀴리 부인과 같은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 법대를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문과로 바꾸셨습니다. 만약 제가 가지 못했던 이과의 길을 갔더라면 지금 어떠하였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까요.  

 당시에는 그 깊은 의미를 잘 모르고 배운 시이지만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불후의 명시입니다.
 또 이런 시도 기억이 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라는 명문으로 시작하는 릴케의 ‘가을날’ 입니다. 기억나시나요.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마지막 단 맛을 위해 이틀만 더 햇볕을 달라던 그 포도주를 삼십년 후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이토록 즐겨 먹게 될 줄 그 시절에는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가을은 고독과 우수로 상징되는 계절입니다. 이 가을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 한편을 읽으며 옛 추억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행복해 지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09.11.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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