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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번째 편지-내일 할 고민을 오늘 하지 않는다.

내일 할 고민을 오늘 하지 않는다.

   지지난 일요일 아침 아는 분 교회에 갔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수원기독초등학교 교내를 아내와 함께 거닐던 중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2층짜리 목조건물 한 동을 발견하였습니다. 직감으로 그 교회의 원로목사님이신 김장환 목사님 사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20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의 외관이 아름다워 이리저리 둘러보고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목사님 큰 며느님과 마주쳤습니다. 저를 소개하고 집이 너무 예뻐 겉으로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였더니 굳이 집안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도 안 계신 집이라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사모님이 미국 분이신 원로목사님 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실례를 무릅쓰고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2층의 목사님 댁은 마치 저희 부부가 찾아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깨끗하게 손님맞이를 위한 청소를 끝낸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곳 하나 어질러진 곳이 없고 잘 정돈된 모습이었습니다.

   아침 8시 예배를 위해 목사님 부부는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셨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할까 하는 저의 의문은 작은 옷 방을 보고 풀렸습니다. 옷 방에는 부부 옷이 합하여 스무 벌 남짓 걸려있었습니다. 며느님은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 옷들이 아버님 어머님이 가진 옷 전부입니다. 옷이 더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주셔서 가지고 계신 것은 이렇게 단출합니다.”

   그러고 보니 집안이 깨끗한 이유가 두 분의 천성이 깔끔한 데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분이 가지신 짐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보다 훨씬 젊은 저희 부부가 가진 짐이 어마어마한 것과 비교하면 정말 놀랄 일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짐이 너무 많아 수납공간을 어떻게 하면 늘릴까 궁리중인 데, 생각해 보니 수납공간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물건을 나누어 주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물건에 대한 저의 집착이 문제인 것입니다.

   수년이 지나도 한 번도 입지 않는 옷, 한번 읽고는 잊혀져 버린 책, 얼마 동안은 너무나도 좋아했지만 이제는 구형이 되어버린 전자제품, 언젠가 필요하겠지 하고 모아둔 각종 팸플릿, 이런 것들이 물리적 공간에 꽉 들어차 여유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유가 없다보니 복잡하고 지저분해져 버린 것입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집을 새로이 고치기 위해 잠시 이사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댁을 방문한 기억이 떠올라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물건을 집어든 손이 버리는 박스로 향하기보다는 남기는 박스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인간의 물건에 대한 집착이 참으로 모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김정운 교수는 자신의 책 ‘남자의 물건’에서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의 인생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더 이상 설렐 물건이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을 경험하지 않은 학창시절이나 20대는 모든 것들이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설렘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마흔 이상의 남자들은 이미 한 번씩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설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의 욕망을 대체할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어떤 물건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그저 모든 물건에 대해 버리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버리기’를 ‘버리기’로 생각하지 말고 목사님처럼 ‘나누어 주기’를 실천하면 집착에서 훨씬 자유로워질 텐데 그 생각의 전환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물건을 하나하나 버리며 걱정거리도 이렇게 하나하나 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걱정거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생겨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고 삽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최순용 변호사는 롱런하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한 변호사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롱런하는 변호사는 사건이 많으면 돈을 벌어 좋고 사건이 없으면 쉴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변호사는 사건이 많으면 사건마다의 걱정거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건이 없으면 사건이 없는 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정말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롱런하는 변호사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모양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 걱정거리를 버리는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걱정거리를 미루는 수준에는 이르고 있습니다. 약 열흘 전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소노 아야코가 쓴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않는다.”를 자신의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억지를 부리며 자랑하였습니다. 저는 그 구절을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내일 할 고민을 오늘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고민은 대부분 며칠 후 아니면 상당기간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것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저는 운이 좋으면 40년쯤 후에 죽겠지요. 그렇다고 40년 후에 닥칠 죽음을 매일 고민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마찬가지로 일주일 후에 닥칠 일을 오늘 고민하여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문제가 터졌을 때 한 번은 깊이 고민하지만 그것으로 끝내야지 매일매일 고민한다면 이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을 한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운행 중에 계속 모의주행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길을 잘 찾기 위한 모의주행이 사고를 유발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과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병으로까지 발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걱정거리에 대한 집착도 물건에 대한 집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집안을 망가트리듯 걱정거리에 대한 집착 역시 몸을 망가트립니다. 저는 두 가지 집착에 대해 서로 다른 발상으로 해결해 보려합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은 ‘물건 버리기’를 ‘물건 나누어 주기’로 생각을 바꾸고, 걱정거리에 대한 집착은 ‘고민 없애기’를 ‘고민 미루기’로 발상을 전환하기로 하였습니다. 얼마나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생각으로 집착이라는 문제에 도전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발상의 전환으로 이런 집착들에서 벗어나시렵니까? 아니면 그냥 이런 집착을 끌어안고 사시렵니까?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4.2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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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이 여러분들이 호응해 주신 덕분에 3쇄를 찍었습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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