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34번째 편지-저는 가슴속에 운림산방과 세연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가슴속에 운림산방과 세연정을 지었습니다.

 큰마음을 먹고 제법 비싼 돈을 주고 소음제거 헤드폰을 샀습니다. 사무실 제 방에 이런 저런 소음이 들려 문건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어 소음제거 헤드폰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구입한 것입니다. 정작 써보니 효과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냥 헤드폰을 쓰면 ‘윙윙’ 하는 소음이 들리다가도 소음제거 스위치를 켜면 갑자기 세상이 고요해집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사무실에서나 차속에서 조용히 할 일이 있거나 생각할 것이 있으면 소음제거 헤드폰을 씁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헤어져 제 자신만의 세상으로 들어섭니다.

우리는 세상과 좀 더 네트워크하기 위해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때때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기도 합니다.

지난주 수요일 선배 변호사님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였다가 오는 길에 갑자기 어깨가 찢어지는 통증을 느껴 쩔쩔매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어깨가 굳다 못해 이제는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시요법으로 어깨 안마를 받았지만 별 소용이 없어 파스를 붙이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속으로 적잖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들 변호사를 하면 마음이 편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고 사니 무엇이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대신해주는 일종의 ‘고민 대행업’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직업의 속성인 것도 같았습니다. 나름대로 스트레스 해소법을 강구하여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소음차단 헤드폰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시켜 주지만 이미 발생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검찰에 있을 때는 사우나만 가도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이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지난 주말 네 부부가 전라남도 여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사무실 사정상 가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스트레스를 푸는 데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여행에 참가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이 선택한 여행지는 전라남도 남단의 진도와 보길도였습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 우리의 여행길을 더없이 유쾌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진도에서는 조선시대 말기 추사 김정희로부터 그림을 배운 후 남종화의 대가가 된 소치 허련의 말년 화실인 ‘운림산방’을 찾았습니다. 광주고검에 근무하던 2003년 방문한 적이 있어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그 빼어난 풍광에 마치 처음 방문한 사람처럼 경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진도의 한라산이라는 첨찰 산을 평풍처럼 두른 운림산방은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을 이루었다하여 그 명칭을 얻었다 합니다. 소치가 물론 뛰어난 화가이지만 이런 풍경을 매일 대하고 살았으면 그의 화가적 감상이 절로 늘었을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우리가 찾은 곳은 고산 윤선도가 20년의 유배생활을 마친 후 생을 다할 때까지 은둔생활을 한 완도군에 있는 보길도였습니다. 고산은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세연정과 같은 기가 막힌 경치의 정자를 지어 놓고 중앙정치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통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세연정은 그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허락하여 어부사시가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킵니다.

두 사람의 사정은 다소 달랐지만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전라남도 끄트머리 섬 자락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한 분은 그림의 세상에서, 한 분은 문학의 세계에서 누구도 쫓아 올 수 없는 최고 경지의 위업을 쌓으셨습니다. 저는 세연정 연못 주위를 느릿느릿 걷다가 문득 서울의 온갖 골칫거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다른 윤선도가 되어버린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빙긋이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습니다. 몸과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는 서울을 훌쩍 떠나 세상과 절연한 옛 선인들의 왕국에 들어서 노니는 동안 저도 모르게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 옛날 은둔과 고독의 장소였던 운림산방과 세연정은 이제 저에게는 새롭게 이해되었습니다. 오늘날처럼 네트워크가 홍수인 세상에서는 때때로 그 네트워크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만이 자신을 스트레스의 쓰나미로부터 보호하는 길이 될 테니까요. 운림산방과 세연정이 그런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운림산방과 세연정이 유형의 공간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슴 속에 만드는 상상속의 공간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의 온갖 시달림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심리적 은둔처로 말입니다.

광주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불과 40분 만에 저를 다시 그 복잡한 현실의 세계인 서울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KTX로 서울을 떠날 때의 저와는 달리 가슴속에 저만의 운림산방과 세연정을 지니고 비행기에서 내려섰습니다. 저는 이제 또 다른 스트레스가 저를 엄습하면 운림산방의 아침 안개를 바라보며 세상사를 가볍게 여기는 법을 떠올릴 것이고, 또 세연정 연못에 노니는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를 바라보며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르면 지날 갈 것이라는 해묵은 진리를 곱씹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슴속의 운림산방과 세연정이 세파에 씻겨 무너지고 사라져 버리면 또 다시 진도와 보길도로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새로운 건축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가슴속에는 운림산방과 세연정이 필요 없으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4.2.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