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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번째 편지-Now and Here?, Now and There?

Now and Here?, Now and There?


  어떤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모임을 하면 시작할 때 참석자들의 스마트 폰을 책상위에 올려놓게 한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 폰의 이메일, 문자 메시지, 카카오 톡 등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 폰을 보는 통에 대화가 이어지질 않고 분위기가 산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대화중에 상대방이 스마트 폰을 확인하는 모습이 그리 달갑지는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저도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딱히 무슨 신호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혹시 연락 온 것이 없나 하고 대화중에 무의식적으로 스마트 폰을 열어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야단치면서 따라하고 있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저희와 같은 변호사들이 고객을 앞에 두고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큰 실례이고 손해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그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중요 고객을 만나는데 사무실 임원 한 사람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대화도중 스마트 폰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고객은 자기 회사에서는 부하직원이 회의도중 스마트 폰을 사용하면 내 보내버린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분이 채 못 되어 저희 임원이 스마트 폰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당황하여 웃으며 이를 저지하면서 ‘습관이 쉽게 바꾸어지지 않지요.’ 하였더니 그 임원도 무안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내부회의를 거쳐 이렇게 원칙을 정하였습니다. 적어도 고객을 만날 때에는 급한 전화 이외에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급한 전화는 양해를 구하고 밖에 나가 받기로 하였습니다.


  기계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바꾸어 놓는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Now and Here''입니다. 지금 같이 자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에 두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한 사람과 만나는 도중에도 여러 사람과 스마트 폰으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소통 방법을 매우 경제적이라고 하고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낸 분과 소통하다가 지금 여기 앞에 앉아 있는 그 누군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린 테일러 브로드스키 감독의 2007년 작 ''Here and Now''라는 다큐멘타리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선천적 청각장애자인 아이린 감독의 부모 이야기입니다. 그 부모는 65세에 달팽이관 이식수술을 받고 생애 처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쁨만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듣는 주변의 소음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부부간에 듣는 정도의 차이는 그들에게 갈등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특수 보청기에 익숙해지지만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보청기를 끄고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고수합니다. 어쩌면 특수 보청기라는 기계장치는 평화롭게 ‘나우 앤 히어’에 집중하여 행복하게 살던 부부의 평안을 깨뜨리는 장애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특수 보청기는 노부부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 폰 역시 멀리 떨어진 사람과의 소통을 쉽게 해주지만 우리가 금도를 잃어버릴 때 바로 ‘나우 앤 히어’의  만남을 깨뜨려 버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즘 일주일에 한번 명상 클래스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최순용 변호사가 ‘위빠사나 명상’의 고수라 직접 일반인들을 상대로 명상 클래스를 열었기에 호기심 차원에서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초보자라 아무것도 모르지만 저희가 함께 읽고 있는 ‘위빠사나 명상’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 삶의 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먼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이것을 해 낼 수 있게 되면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였습니다. ‘나우 앤 히어’에 집중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통찰하면 자신의 내면이 변화하여 평안과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문명의 이기로 ‘나우 앤 히어 Now and Here’(지금 여기)에 살지 않고 ‘나우 앤 데어 Now and There’(지금 저기)나 ‘덴 앤 히어 Then and Here’(그때 여기) 나아가 극단적으로 ‘덴 앤 데어 Then and There’(그때 저기)에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우 앤 히어’ 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도 ‘나우 앤 히어’에 집중하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2.2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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