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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번째 편지 - 이어령 선생님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



2022년 2월 28일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한국 사회에 끼친 공적은 말로 이루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 상당수가 이어령 선생님의 강의와 책을 통해 다양한 감동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저도 여러 번 강의를 듣고 가까이에서 말씀 들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억하는 이어령 선생님은 선생님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한 대목을 통해 만난 선생님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대목을 누군가에게 전할 때에는 가슴이 미어지고 울컥해짐을 느낍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어령 선생님은 따님 이민아 목사의 힘든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민아 목사가 망막박리 증세로 실명 위기에 처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 읽어봅니다.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여 받았더니 민아가 실명 위기에 있어 한 달 가까이 집 안에서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급히 민아에게 달려갔던 날, 하와이는 너무나도 눈부시고 아름다웠지요."

그러나 이어령 선생님은 하와이의 대낮이 한밤처럼 어두웠다고 적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따님을 만나고 자신도 모르게 ‘오 하나님’ 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몇 군데 의사를 찾았지만 수술도 안 되고 약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아는 찬송가를 부릅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이 바보야. 노래가 나오니. 책이 읽히니.' 속상한 김에 고함을 치고 싶습니다."

"그런데 민아가 교회를 같이 가자는 겁니다. 하와이 교회는 한국인들이 없어서 아무도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놀러 가는 셈 치고 동행하자는 거지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 선생님에게 교회와 하나님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지성이기에 앞서 아버지입니다.

"나는 민아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나섰습니다. 주로 섬 원주민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였지요."

"한국의 어떤 교회가 이렇게 초라하고 가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이들을 보고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이 그간 공부하고 대중들에게 전했던 그 지성과는 다른 무엇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은 모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 달라고 합니다.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아이나 어른이나 늙은이나 젊은 사람이나 살찐 사람이나 야윈 사람이나 엎드려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지성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저들에게 하나님이 계셔 주시지 않는다면 저들 어이할꼬. 그 실망과 절망을 어이할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민아가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된다면 무엇이 남을까. 나도 모르게 나는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지성 이어령 선생님은 영성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제발 민아를 위해 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하나님은 계셔야 한다고 황급히 무릎을 꿇었지요."

저는 이 대목에서 숨이 콱 막혔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 종교적 견해가 있습니다. 저도 많은 종교 서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이 표현만큼 강력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하나님의 실존 여부와 관계없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꼭 계셔 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에는 신을 찾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모두가 자신이 믿는 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님은 따님 민아와 불쌍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짖는 광경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최고의 지성답게 처음부터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울부짖는 자신의 딸과 불쌍한 사람들은 얼마나 허망할까요.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어령 선생님은 이 광경에서 하나님이 계셔 주셔야 한다는 당위론적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이 대목에 깊이 공감한 것은 제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한순간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실존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믿음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계시는 어머님을 뵐 때마다 어머님이 평생 기도하고 힘들 때마다 찾았던 하나님이 꼭 계셔 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이어령 선생님 덕분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어령 선생님의 신앙은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는 책에서 더 깊어지십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의 마지막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런 기도를 올립니다.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이민아 목사도 이어령 선생님도 모두 어느 날 문득 눈뜨지 못하고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저도 이어령 선생님과 같은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을 위해 꼭 계셔야 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3.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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