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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6 이코노미스트] 특화된 영역, 중소형 딜로 승부수

IT・정보보안에 역량 갖춘 ‘행복마루’… 고객 밀착형 서비스 제공하는 ‘현’

법률시장 개방의 시기를 맞아 국내 대형 로펌은 덩치 불리기와 전문화에 나섰다. 이와중에 소형 로펌은 자기만의 분야를 확보해 경쟁력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른바 ‘부티크 로펌’을 지향하는 것이다. 부티크 로펌은 소수의 실력 있는 전문 변호사로 이뤄진 법무법인을 뜻한다. 대형 로펌이 법조계 고위직을 거친 변호사로 진용을 짜고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는 변호사를 대거 거느리고 있다면 부티크 로펌은 고유 분야만 취급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30년 전 대형 로펌에서 탈피해 전문성을 강조한 부티크 로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중 실력 있는 회사는 대형 로펌이 합병하거나 기존 분야에서 영역을 넓혀 상위권 로펌으로 성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법률 서비스 시장은 경쟁이 갈수록 격화 되고 있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졸업생이 배출된다. 사법연수원 졸업생과 합쳐 약 2500여명의 법조인이 탄생한다. 시장 개방으로 가뜩이나 설자리가 좁아지는 변호사들이 특화를 위해 전문화・소형화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한 영역에만 집중해 역량을 제대로 키운 부티크 로펌을 찾아보기 힘든게 현실이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부티크 로펌을 지향하며 시작하더라도 한쪽 분야의 사건만 수임하려면 적은 매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잡다한 송무 둥 무관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행복마루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부산고검 검사장, 법무연수원 원장을 거친 조근호 대표변호사가 설립한 행복마루는 IT와 기술보안, 정보보안 분야에 집중하는 ‘작고 강한 로펌’을 표방하고 있다. 파트너인 구태언 변호사는 서울지방검찰청 컴퓨터수사부, 첨단범죄수사부를 거치며 해당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2011년까지 김앤장에서 지적재산권과 개인정보보호, IT보안을 다루며 검찰에서 쌓은 실력을 발휘하다가 지난해 9월 행복마루 설립과 함께 이 회사에 합류했다. 조대표는 “특정 변호사의 명성이나 전관예우에 기대는 로펌이 아닌,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가진 로펌으로 키우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 대표가 경영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구 변호사가 전문분야를 총괄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IT, 기술・정보보안에 주력

최근 수 차례 불거진 대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기업간의 치열한 기술 특허 관련 공방에서도 알 수 있듯 법과 기술이 만나는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행복마루는 늘어나는 기술 관련 법률자문 수요를 소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구 변호사는 컴퓨터 등 저장매체나 인터넷에 남아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포렌식 기법의 전문가다. 만약 한 회사의 기밀이 컴퓨터를 통해 누출된 경우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포렌식 기법을 활용해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최근 행복마루는 삼성의 전 ・현직 연구원과 LG 관계자들이 연루된 삼성 OLED기술 유출 사건에서 피해자 회사인 삼성을 고소대리 했다. 상대 로펌은 국내1위인 김앤장.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기술과 컴퓨터의 영역에 대한 변호사진의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외에도 SK커뮤니케이션즈 해킹 사건, KT의 개인정보 유출 건 등 널리 알려진 개인정보 누출 사건과 기업의 영업비밀 유출 사건을 도맡았다.
부티크로펌을 지향하는 회사는 설립 초기 딜레마에 빠지게 마련이다. 당장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전관 변호사를 위주로 송무 업무에 집중하는 편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행복마루는 구 변호사를 주축으로 IT 세미나, 정보보안 관련 강의 등 저변을 확대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좀 더 길게 보고 브랜드 가치를 쌓겠다는 것이다. 신규 변호사도 모두 공학도 출신을 뽑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행복마루가 스페셜리스트를 목표로 한다면 법무법인 현은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에 위치한 현은 공승배 파트너변호사를 비롯해 5명의 파트너변호사 모두 30대 후반~40대 초반인 젊은 로펌이다. 국내에서 변호사 최초로 CFA(국제 재무분석사)자격증을 취득한 공변호사를 주축으로 인수합변(M&A)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10년, 2011년 2년 연속 국내 인수합병 법률자문 시장에서 10위권 안에 들었다. 변호사 인력 21명에 불과한 작은 로펌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현의 5명 파트너 변호사는 모두 대형 로펌출신으로 각기 맡은 전문 분야가 있다. 강남규 파트너변호사는 미국 로펌을 거치고 CFA를 취득한 조세분야 전문가다. 이성우 파트너변호사는 KAIST 전자공학과 대학원 출신으로 기술적 지식 배경이 탄탄하다. 그가 이끄는 IT・지적재산권 팀의 다른 변호사 3명도 과학고・KAIST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외에도 두 명의 파트너변호사가 각각 부동산, 소송을 맡았다.

2년 연속 M&A 20위권 진입

기업들은 인지도・신뢰도 때문에 대형 로펌을 찾지만, 정작 실무는 중요한 사건이 아닌 경우 파트너변호사가 아닌 시니어급 변호사가 주로 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객도 만족을 못하고, 변호사로 일하는 자신도 헌신할 동기가 부족함을 느꼈다. 실력은 대형 로펌의 전문변호사 수준으로 갖추되 더 밀착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현을 설립했다. “대형로펌에 실망한 고객이 현의 타깃”이라고 공변호사는 설명했다. 중소형 딜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각 분야 전문성을 다지고 자문 로펌이라는 성격을 확실히 하기 위해 부장급 이상을 거친 전관 변호사를 채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업계에서 입소문을 탄 덕에 대형 로펌이 작은 규모 로펌을 원하는 고객에게 추천을 하기도 하고 협력했던 외국 로펌이 한국 관련 업무에 다시 제휴를 의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도 현의 장점이다. 현은 골드먼삭스의 지분투자 자문, 크루셜텍의 참테크글로벌 경영권 인수, 국내 벤처회사 올라웍스가 인텔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자문을 담당하는 등 둙직한 중소형 딜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법률 시장 개방은 실력 있는 중소형 로펌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공 변호사는 “외국로펌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한국법을 자문할 곳이 필요한데, 실력과 경험을 갖춘데다 비용 측면에서도 대형 로펌에 비해 경제적인 현과 같은 중소형 회사에게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며 “오히려 법률시장에 활기가 넘쳐 국내 대형 로펌과도 경쟁하며 일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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