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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5 한국경제 - 한경에세이] [3주차]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주말에 《정조 치세어록》이란 책을 읽었다. 정조는 수많은 신하를 겪어보고 "사람은 각자가 생긴 대로 써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 대목을 읽다가 필자에게 '창업 공신'의 비리 문제를 토로한 중견기업 창업자들이 떠올랐다.

매출 수천억원의 중견기업도 창업 초기엔 창업자와 몇몇 직원밖에 없었다. 회사는 단기간에 초고속으로 성장한다. 세월이 흐르면 창업 공신은 대부분 임원이 된다.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이도 있고, 실적을 못 내고 겉도는 이도 있다. 

창업자는 그 사이 '구멍가게 주인'에서 '경영인'으로 탈바꿈한다. 최고경영자 과정이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고, 다른 기업 오너나 공직자를 만나다 보면 눈높이가 점점 높아진다. 결국 창업자는 창업 공신 이외에 젊고 유능한 인재를 원하게 된다. 외국에서 공부한 젊은 인재들이 미래 전략을 담당하는 임원으로 영입된다.

창업자는 창업 공신과 젊은 인재 간 시너지 효과를 원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간다. 일부 창업 공신은 젊은 인재들을 못마땅해한다. 반대로 일부 젊은 인재는 창업 공신을 비난한다. 비난이 비난을 낳고, 갈등과 반목이 깊어진다.

그 과정에서 일부 창업 공신은 "창업주에게 쫓겨나기 전에 한몫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비리가 적발될 때를 대비해 창업자 비리를 협상 카드로 준비한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면 회사 창업 당시 형제 같던 창업자와 창업 공신은 한순간 원수로 돌변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일부 겉도는 창업 공신이라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창업자가 오랜 세월 그에게 줬던 애정의 눈길을 거두는 순간, 그의 가슴속 충성이 배신으로 바뀐 것이다. 이 문제를 창업 공신의 측면에서 보는 한 문제를 풀 수 없을지 모른다. 
 
문제의 해답이 혹시 창업자에게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정조는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해 인물을 인물의 성질대로 내버려두고 인물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창업자들이 기둥감을 대들보감으로 생각하고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건 아닐까. 

조근호 < 행복마루 대표 변호사 gunho.cho@happy-maru.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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