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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5 한국경제 - 한경에세이] [2주차] 어머님께 드리는 선물

지난 일요일 어버이날, 평생 “이날엔 원하는 게 없다”던 어머니가 어버이날 선물을 원하셨다. “이번 어버이날에 꽃망울이 맺힌 동양란 하나 사 다오.” 느닷없는 어버이날 선물도 그렇지만 동양란이라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10년간 키우던 난들이 이번 겨울에 모두 죽었어. 그래서….”

아흔이 다 된 어머니는 마음 붙일 게 필요한 듯했다. 어머니의 선물 요청을 받고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2011년 변호사가 됐을 때다. 어머니께 평생에 남을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어머니의 지난 세월 살아온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가난한 과거, 고생한 옛날, 속상한 시절의 이야기지만 어머니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고민 끝에 작가에게 부탁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출판된 책 《엄마 김영순》은 2012년 어머니의 85세 생신 선물이 됐다.

이 책을 만들어 드린 뒤 필자는 ‘어머니께 평생의 선물을 다 해드렸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도 그리 이야기했고, 어머니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식을 키우면서 깨달은 게 있다. 사실 어머니에게 필요한 선물은 자서전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시절을 같이 기억하며 인생을 응원해 줄 자식이 아니었을까. “어머님, 참 열심히 사셨습니다”는 아들의 한마디가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아는 어느 기업인은 치매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저녁 약속을 모두 포기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1년여 동안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의 생명 일부를 주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아들은 생명인 시간을 어머니께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머니의 야윈 손을 잡고 대답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동양란 많이 사 드릴게요.” 어머니의 퀭한 두 눈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머님 미안합니다. 제 시간을 선물로 드릴게요.” 2016년 어버이날은 어머니에게 드려야 할 진정한 선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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