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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HEREN - 삶을찾아서] 행복마루 조근호 대표의 용인 주택

성공한 삶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관습적으로 쓰는 성공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면 조근호 대표는 성공한 삶에 부합하는 인생을 살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장까지 지낸 후 은퇴, 현재는 법률사무소의 대표, 사회적 커리어, 경제적 만족, 장성한 딸과 아들, 남부러울 것 없는 성취를 이룬 그는 얼마 전 주말주택을 구입했다. 그를 찾아간 날은 마침 리모델링을 끝내고, 집 안에 가구도 다 들인 날이었다. 그의 주말주택은 용인 코리아 CC 내에 위치한 투스카니 힐스라는 타운하우스 단지다. 그는 이 타운하우스 한쪽의 작은 빌라에 2년 동안 전세로 주거했었다. 2년간의 연습 생활을 거친 뒤 이곳으로 옮긴 셈이다. "서울에서 떨어져서 산다는 것이, 자연과 호흡하는게 어떤지 2년 정도 체험해봤어요. 막상 해보면 별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좋은 거에요. 왜 진작 안 했을가 후회돌 정도로, 그래서 이 집을 구입했어요. 차이가 있다면 예전 집은 빌라였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단독주택이라는 거죠. 문을 열면 바로 내 정원이 있어요. 이게 더 좋을것 같았어요."

조대표의 주말주택은 3층 규모의 단독주택 형태다. 다만 일반적으로 '주말주택'이라는 말을 떠울릴 때 연상할 법한 텃밭 같은 것은 없다. 조망 역시 숲이나 강 대신 잘 조성된 골프장과 인공 호수가 대신산다. "보통 주말주택이라면 밭을 일구고, 식물을 키우는 삶을 생각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강원도 산골 같은 곳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말주택은 접근성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맘이 울적하고 떠나고 싶을 때 아무 고민 없이 갈 수 있는 곳, 차로 1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을 생각했습니다. 용인이 가장 좋은 대안이었죠. 저에게 주말주택은 자연과 함께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제 삶을 가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으니까요. 자주 가지 못하는 곳은 의미가 없었죠."

그는 지난 2011년 검찰에서 퇴직했다. 1983년 검사 임용 후 근 30여년을 다닌 직장이었다. 고검장이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랐지만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중압감과 불안이 엄습했다. 검사 시절의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 탈출구로 찾은 것이 주말주택이었다. "퇴직하고 나니 기업가들이 존경스러워지던데요? 자기 사업을 한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공무원 시절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압박이 있었죠. '이러다가 정말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절박하게 탈출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 즈음 이곳을 우연히 방문했어요. 이곳에 왔더니 놀랍게도 뭔가 해소되는 듯한 게 빨리 용인의 이 주택단지로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곧바로 전세 계약을 했습니다. 즐기거나 폼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탈출구를 찾는 심정으로 계약을 했죠.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어요. 올 때마다 숨통이 틔고 많은 에너지를 얻었어요."

2년 동안 서울 자택과 용인 주말주택을 오가면서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더 나이가 들면 건강과 열정이 모두 다 쇠락해 있을 텐데 미리 은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이 부분 은퇴라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삶의 일부를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는 거다. 금요일 저녁 6시부터 월요일 아침 9시 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은퇴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은퇴하면 어떻게 살까 생각해봤습니다. 절대 서울에서 살 것 같지는 않고, 슬로 라이프를 즐길 것 같았어요.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가치들도 지금과는 또 다를 거고요. 사색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니 그런 일을 많이 하겠다 싶었죠. 책도 자기 경영이나 법학 책 대신 철학이나 예술에 관한 책을 읽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걸 신천에 옮겨 보겠다고 생각한 거에요. 일주일에 이틀만이라도 은퇴자처럼 사는 거죠."

조대표는 몽테뉴를 생각했다. 맞다. <수상록>의 저자인 저명한 철학가. 조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몽테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책을 분철해서 지니고 다닐 정도로 몽테뉴를 사랑했다. 실제로 몽테뉴도 판사 출신이었다. 40세까지만 판사직을 하고 그만둔 뒤 20년 동안 자신의 성에서 스스로 유배한 채 글만 썼다. 조 대표가 오랫동안 <조근호의 월요편지>라는 칼럼을 써온 것도 몽테뉴의 삶이 자신의 삶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더 주말주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보통 주택을 꾸밀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건 사실 거실과 침실이다. 하지만 조대표는 이 주말주택을 꾸미면서 어떤 공간보다 3층 서재를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 고심해서 공간을 디자인했고, 그만큼 멋진 서재를 꾸몄다. 장작을 직접 태울 수 있는 벽난로까지 뒀다. "서재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이에요. 저도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았고, 그러니 아이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인생의 지혜도 많죠. 하지만 지혜를 전달한다는 게 단순히 이야기로만 끝나는 건 아닙니다. 그걸 어떤 공간에서 나누느냐도 중요하죠. 저는 서재가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재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압축해 보여주는 공간이잖아요. 지금 내가 이 서재에 꽂아놓은 책들이 곧 나의 인생을 증명하는 거죠. 서재라는 공간에서 내가 아들에게 내 경험을 말한다면, 그 말의 무게가 훨씬 더 묵직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벽난로도 비슷한 장치에요. 살아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주는 미학인 있어요. 누구라도 불꽃 앞에 서면 경건한 마음이 되잖아요? 장작이 타는 벽난로 앞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얻은 깨달음을 전해줄 때, 그건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라 내 영혼의 울림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고, 부러운 인생이지만 그만큼 치열한 삶이었다. 소속 집단 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는 누구보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었고, 그 결과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는 늦가을 노을처럼 쓸쓸하게 말했다. '내 인생의 핸들을 스스로 쥐어본 적이 없었다'고, 누군가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을 뿐,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간 건 아니었다고, 아들에게는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도 아들에게 끊임없이 말한다고 했다.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그래야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지금 그의 꿈은 이 주말저택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들, 손자, 증손자 그 다음 대까지 "해외에는 한 가문이 몇 백 년 동안 성을 소유하곤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안 쓰던 방을 청소하다 200년 전 선조의 유품을 발견했다든가 하는 드라마틱한 애기를이 나와요.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이 집을 내 아들, 그리고 먼 후대까지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저 호수와 숲을 바라보며 했던 사색을 먼 후손이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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