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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7 마켓인사이트] PEF업계에 부는 디지털포렌식 바람

중소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A파트너스가 디지털 포렌식 전문 컨설팅 회사인 행복마루를 찾은건 2015년, 제조업체 B사를 인수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A파트너스는 B사 인수 후에도 기존 오너에게 경영을 맡기고 있었다.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기존 오너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 회사의 성장분을 공유하기 위해 소수지분(20%)도 남기는 구조다. PEF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실적. 매출은 예상대로 순조로운데 순이익에서 매번 구멍이 났다. 횡령&배임이 의심스러웠지만 기존 오너 일가가 회사를 장악하고 있으니 제대로 조사하기도 어려웠다. 섣불리 조사를 시작했다가 '새 주인인 PEF가 회사 임직원들을 의심한다'는 내부 반발에 부딪치고 대외적으로 '문제 있는 회사'로 낙인 찍힐 우려도 있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회사를 들여다 보기 위해 추천받은 곳이 행복마루였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개인용 컴퓨터나 회사 서버 등에 남은 디지털 정보를 수집&분석해 비리의 증거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법무연수원 원장과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출신인 조근호 대표(사진)가 2012년 문을 연 행복마루는 국내 최초의 디지털 포렌식 전문회사다. 400대의 업무용 퍼스널컴퓨터(PC)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전문인력과 노하우를 갖춘 행복마루는 실사 착수 두 달 만에 21억원어치의 횡령액과 30억원어치의 손실누락 사실을 찾아냈다. 확실한 증거 앞에서 기존 오너는 보유지분을 포기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새로 인수한 기업을 샅샅이 파악하려는 건 모든 PEF들의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아무리 치밀한 분석과 실사를 거치더라도 어제까지 남남이었던 회사 사정을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막상 인수하고 보니 재무제표가 조작돼 있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발채무 탓에 낭패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PEF와 기업고객이 행복마루의 문을 두드리는 건 회계& 법률 실사로는 밝혀내지 못하는 회사의 조작된 정보와 임직원 비리까지 찾아내 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가 비리 의심 대상자의 PC에서 이메일, 인터넷 히스토리 기록, 문서 키워드 분석,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삭제 파일 복원 등을 통해 증거를 찾아내면 검찰 수사관 출신 회계사가 회계 자료를 분석하고 검사 출신 변호사가 검찰의 수사 기법을 적용하는 '협업 감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국내 최초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도 디지털 포렌식을 도입한 행복마루는 자사의 실사 시스템을 'PMA(Post Merger Assessment 인수 후 실사)'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 했다. M&A의 필수 과정인 인수 후 통합(PMI)을 세분화한 작명이다. 지난 6년간 행복마루가 분석한 PC와 스마트기기만 약 8000대. 고객 회사들은 행복마루가 확보한 증거를 내부 협상과 기존 회사와의 소송에 활용한다. 최근에는 운용자산(AUM) 규모가 20조원을 넘는 글로벌 PEF도 새로 인수한 기업의 실사를 맡겨왔다. PMA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대형 로펌과 회계법인도 디지털 포렌식 팀을 만들고 있다. 조근호 대표는 "디지털 포렌식으로 해당 기업의 민감한 정보를 얻게 된 로펌과 회계법인이 향후 외부 회계감사인이나 M&A의 상대측 자문사가 될 수도 있다"며 "고객사들이 이해상충 가능성이 없는 행복마루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영효/안대규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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