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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5 Leaderpia - 발행인이 만난 리더] 행복한 검사장 이야기

조영탁 발행인(이하 Publisher) 검찰이라는 조직과 행복이라는 단어, 그리고 경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의 10개월은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영을 공부하면서 검찰에도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만 역시나 독특한 발상임에는 틀림없는데요. 어떤 것이 계기가 돼 경영을 검찰 행정에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조근호 검사장(이하 조 검사장) 사람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을 겪어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듯합니다. 대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지내다가 광주고등검찰청의 평검사로 발령을 받게 됐어요.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문득, 검찰을 영영 떠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검찰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업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졌습니다.


Publisher 기업처럼 생각하고 일한다는 것이 검찰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조 검사장 기업처럼 생각하자는 것은 바로 ‘교육’이며, 기업처럼 일하자는 것은 ‘혁신’의 한 방법인 ‘식스 시그마’이지요. 검찰청의 검사의 업무과정은 3번의 결재로 이뤄집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능한 사람이 모인 조직인데 어떻게 결재를 세 번씩이나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장과 차장을 거치면서 배운 게 오직 결재하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이 들더군요. 개별 사건에만 집착했지 전체 검사들이 어떻게 사건들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경영 스타일의 사고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예 인근 대기업을 방문해 배울 것을 권했어요. 김천의 삼성전자를 갔더니 ‘아리랑 교육’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직원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땀 흘리는 과정을 통해 충성심을 고조시키고 부드러운 조직을 만드는 훈련의 일종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시도했어요.


혁신 후 돌아온 것은 상처뿐


Publisher 시도한 후 반응은 어땠습니까.

조 검사장 반응이요? 폭발적이었어요. 또 우연히 포스코 소장이 우리 쪽에 와서 식스시그마 관련 강연을 했습니다. 우리 조직에서도 식스시그마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이에 관련된 전문가 도움을 받아 4개월 간 식스시그마를 하게 됐습니다. 기업에서 볼 때는 이는 아주 기초적인 교육에 불과하지만 검찰이라는 조직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왔어요. 제 방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직원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검찰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식스시그마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검찰 혁신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된 기록물을 남겼어요. 대구지검에서의 일이었지만 이것을 전체에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검찰청장 내정자에게 보고를 드렸고, 신기해하며 흥미롭다는 반응이 왔습니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듣더니 이것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확신에 찬 대답을 했지요. 그래서 이 분이 검찰청장이 되면서 저를 대검찰청에 발령을 냈고, 혁신추진단을 만들게 됩니다. LG, 현대, 포스코 등 2년 동안 수많은 기업들을 방문했어요. 우리의 조직 경영력이 제로라는 것을 그때마다 절감했습니다. 당시 트렌드가 ‘혁신’이다 보니 혁신경영은 자연적인 흐름이 됐고, 그 안에 식스시그마와 워크아웃을 접목시켜 두 개의 틀을 유지하는 방안을 채택했습니다.


Publisher 대개 검찰의 경우 중장기 목표는 어떻게 세웁니까?

조 검사장 검찰이라는 조직은 1년 목표라는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물론 목표를 세우긴 하지요. 하지만 지표가 없기 때문에 달성하는 수치를 비교할 지표가 없어요. 그렇기에 평가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제가 평가와 과제를 선정하도록 제안했어요. 비전 달성을 위한 중간 과제로 무엇을 삼고 있는지 정리해 오라고 했지요. 처음 대부분의 직원들은 모두 못 하겠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2년간 그렇게 환영 받지 못한 ‘혁신’을 했습니다. 경영의 용어도 낯설고 거북한데다, 혁신이라는 게 은근히 상대방을 들들 볶거나 쥐어 짜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 때 사람들에게 등 뒤에서 쏜 화살에 많이 맞았습니다. 조근호가 출세하려고 검찰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의혹의 눈초리들이 가득했습니다. 다음 번 보직에 대한 두 가지 안이 왔지만 저는 모두 거절하고 떠났습니다. 남들이 한직이라 불리는 곳에 자원했고요. 혁신으로 입은 상처가 너무 많았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간 혁신은 그 순수성을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떠난 것이지요.


Publisher 맞습니다. 혁신을 하기 위해 하지 않던 것을 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부담이 솔직히 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움을 받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지요.

조 검사장 제가 혁신 외의 다른 것을 향해 뛰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침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발령을 받게 됐습니다. 다시 수장이 되는 기회가 생긴 겁니다. 어떤 취임사를 통해 검찰청을 경영해야 할 지 많은 고민에 휩싸였어요. CEO 검사장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만큼 준비를 해야겠다고 싶어 서점에 갔지요. 그러다 제 눈에 띈 것이 바로 조영탁 사장님이 쓰신 《행복경영》이라는 책이었어요. 이 책에 적힌 그대로 실천해보자는 생각으로 철저히 순서를 밟아나갔습니다. 그러면서 행복경영이 검찰이라는 조직에 자리잡아 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혁신은 인류가 조직을 만든 이래로 계속 돼 왔습니다. 그리고 그 혁신에는 반드시 혁신 피로감이 축적되게 마련입니다. 어깨가 굳으면 마사지로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듯 혁신을 조직에 접목시킨다면 그것을 풀어주는 마사지 역할로 선택한 게 바로 ‘행복경영’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갖고 나가지 않으면 행복경영에서 오는 친화적인 효과를 갉아먹을 수 있어요. 그렇기에 행복경영 안에 혁신을 슬그머니 넣었지요. 행복경영의 5대 법칙을 존중, 비전, 칭찬, 교육, 경청으로 정했는데 이것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질책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존중이나 칭찬의 의미도 들어가겠지만 저는 첫 취임사에서 직원들에게 질책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어요. 행복경영의 가장 기초에는 이것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서울지검으로 옮긴 지금까지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질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 나아가서는 사랑이라는 덕목이 바탕이 돼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을 향한 저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바로 편지를 쓰는 것이었어요.

Publisher 아하, 이것이 바로 ‘월요편지’의 시작이군요. 행복경영의 툴로 가장 크게 활용하신 게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42회라는 대단한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제가 읽어보니 편지 한 통마다 엄청난 정성이 깃들여져 있던데요.

조 검사장 제가 연애편지 한 번, 게시판에 댓글 한 번 달아본 적 조차 없었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내 조직이다 생각하니 못할 게 없더라고요. 절절함, 애절함을 고스란히 편지에 담았더니 그것을 조금씩 사람들이 알아보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첫 번째 편지는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로 시작했어요. 조직의 비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인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이 조직의 비전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저급한 속세적인 목표일지라도 그것조차 없는 사람은 조직의 비전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질 않습니다. 사실 답장 같은 것은 애당초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답장이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지켜보겠다’는 굉장히 냉소적인 답장에서 점차 갈수록 친구가 돼가는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 즉 CEO와 부하직원이 친구가 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저의 바람이 조금씩 현실로 옮겨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이라든가, 사별에 대한 외로움, 또 가출 자녀에 대한 고민 등 개인사를 담은 편지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크게 느꼈지요. 서로의 접촉면을 늘린다면 더 깊은 친밀도를 쌓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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