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15. 01 조선비즈 - Weekly BIZ] 회사에도 선배 지혜 전하는 '기억 전달자' 필요

[조근호의 '행복 경영'] 

- 영화 '더 기버' 
감정 없어진 미래 사회… 이전 세대 기억 가진 기버 
17세 기버에 기억 전달해… 감정 회복된 사회 만들어 

- 책에는 없는 경험 
직장 선배에게서 듣는 회사 역사와 직장 경험 
후배의 성장에 도움… 두 세대 잇는 작업 필요

조근호 행복마루 컨설팅 대표
 조근호 행복마루 컨설팅 대표
강의 때 질문한다. "혹시 고조부 성함을 아시나요?" 대부분 모른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는 선조가 자신의 이름, 즉 자신들의 가치관을 후손에게 남기려는 의지가 부족한 데도 기인하는 것 아닐까?

어느 선비가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벼슬을 못 하여 밭뙈기 하나도 물려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두 글자를 물려주겠다.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쓰고도 다 쓰지 못할 거다." 이 편지는 그의 후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후손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편지를 쓴 선비가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루시'에서 철학 교수 노먼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명의 유일한 목표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전하는 것이었소." 그런데 우리는 이런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몇 년 전 고교 2학년 학생 20명이 6개월에 걸쳐 할아버지, 할머니 5명의 자서전을 써드린 일이 화제가 되었다. 한 학생은 "6·25가 북한의 남침이더라고요. 그때 상황을 생생하게 듣고 나니까 이제 정확히 알겠어요"라고 말했다.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것을 왜 '직접' 전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는 대목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뻘 되는 고교 2학년생에게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것을 전해 주는 장면은 최근 개봉한 영화 '더 기버: 기억 전달자(The Giver)'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에 인간은 전쟁, 차별, 가난, 고통을 없앤 '커뮤니티'를 만든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커뮤니티가 정한 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이 커뮤니티가 건설되기 이전 기억을 대대로 전수받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더 기버', 즉 기억 전달자이다. 그는 다음 세대의 기버에게 자기의 기억을 전달한다. 그 기억에는 커뮤니티가 제거해 버린 고통, 슬픔, 기쁨, 사랑 등의 감정이 섞여 있다. 원로 기버가 17세 기버의 손을 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억을 전해 주는 장면은 할아버지가 고교 2학년생에게 자기 인생을 담담히 전달하는 모습을 복제한 듯하다. 결국 영화에서 열일곱 살 기버는 커뮤니티를 탈출해 감정이 제거된 커뮤니티에 감정을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더 기버: 기억 전달자’에서 원로 기버(왼쪽)가 17세 기버에게 자기의 기억을 전달해주고 있다
 영화 ‘더 기버: 기억 전달자’에서 원로 기버(왼쪽)가 17세 기버에게 자기의 기억을 전달해주고 있다. 우리 기업들에서는 선배들의 직장 생활 기억이 후배들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고 있다./와인스타인 컴퍼니
이를 기업에 대입해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그룹은 1930년대에 창업했으니 대부분 8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할아버지 직원과 손주 직원이 공존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세대는 대부분 퇴사했을 것인데, 그들은 각각 직장 생활의 귀중한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기버이다.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 기업마다 역사를 정리하여 책을 쓰고 직원을 교육한다. 그런데 기업에서 평생을 일한 직원 개개인의 이야기는 얼마나 전수되고 있을까.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써드리며 6·25가 북한의 남침임을 정확하게 알았다는 고교생의 말에서 보듯, 책으로 읽는 역사보다 기억 보유자로부터 직접 듣는 이야기가 더 힘이 있는 법이다.

과거의 회식 자리에는 "옛날에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개인 차원의 도제식 교육이 있었다. 연말 회식 자리는 무용담 경연장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회식이 음악회, 연극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결과 선배 세대의 무용담을 들을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 회사 차원에서 선배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 오래된 선배 직원들을 찾아가 그들의 기억을 전달받고 그것을 글로 정리해 보는 작업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먼저 회사의 역사를 배울 것이다. 어떻게 성공하고 언제 실패하였는지. 나아가 직장 생활의 생생한 경험도 전수받게 될 것이다. 힘든 직장 생활을 이겨낸 이야기, 상사나 부하와 겪는 갈등, 승진과 좌절, 덤으로 그의 인생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신입 사원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삶의 진한 감흥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신입 사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들은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선배 세대의 지혜를 떠올리며 그 어려움을 극복해 갈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성장하여 그다음 세대를 위한 기버의 역할을 당당하게 해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앞으로만 달려 나가느라,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는 그 무궁무진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제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행동에 나설 때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