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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번째 편지 - Mansplain or Mansk


"A 선수. 야구의 세계에서 보면 훌륭하였던 선수가 훌륭한 감독이 되는 확률이 낮아 보이는데 왜 그런가요. 오히려 선수 시절 화려하지 못하였던 분들이 감독으로 변신하여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잖아요. 공직이나 기업의 경우에도 일을 잘하던 직원이 관리자가 되어서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지난 토요일 우연히 어느 모임 식사 자리에서 미국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였던 전직 프로야구 선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참석한 분들이 대부분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이라 모두에게 관심이 있는 주제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감독은 매니징이나 코칭을 하여야 하는데 지시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투수가 잘못 던져 홈런을 맞았습니다. 이런 경우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제가 경험한 한국의 코치는 '야 뭐 하냐. 똑바로 안 해.' 합니다. 그러면 투수는 '예' 하지요. 그런데 다시 안타를 맞으면 또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야. 이렇게 하라고' 하며 화를 냅니다. 이 경우 두 가지 종류의 선수가 있습니다. 착한 선수는 '예' 합니다. 그러나 약간 건방진 선수들은 '하라는 대로 했는데요.' 하고 말대답을 합니다. 이것이 한국 코치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미국 코치는 달랐습니다. 제가 홈런을 맞았을 때의 일입니다.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영어도 잘못하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다음번 타자에게 무슨 공을 던질 생각이야.' 저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 홈런을 맞아 정신이 나가 있는데 다음번 타자에게 던질 공이 생각나겠습니까? 그리고는 자신을 쳐다보라고 합니다. 눈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개를 못 들자 다시 이야기합니다. 'Look at me. Look at me.' 간신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다음번 타자에게 무슨 공을 던질 것인지 또 물어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질문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투수 코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공을 잘못 던져 안타를 맞으면 또 투수 코치가 올라와 다음번에 무슨 공을 던질 것인지 계속 질문합니다. 이러면 나중에는 제가 거짓말을 합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바깥쪽 직구'라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물론 미리 생각한 것도 아니지요. 그러면 투수 코치가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그냥 돌아갑니다. 저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납니다. 저 스스로 제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잖아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다음번에 투수 코치가 올라오면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전개됩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거짓말을 할 필요 없이 미리 고민한 바가 있었으니 잠시 생각하고 변화구나 직구를 던지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던지고 나면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여부를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처럼 미국의 투수 코치는 선수가 계속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스스로 정답을 찾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아이디어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 상사는 아랫사람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Judge, 즉 판단합니다. 비록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래 해봐' 하면 그는 실패하면서 자신을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때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속 터져요." "한국 사람들은 못 기다려요." "알기는 아는데 그렇게 하기 진짜 힘들어요"

A 선수는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선수 경력이 좋은 분들이 좋은 감독이나 코치가 못 되는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은 예전에 선수 시절 연습할 때 매일 1,000개씩 공을 때렸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똑같이 시킵니다. 그러나 선수들은 1,000개를 때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화를 내며 억지로 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선수는 엄청난 집중력과 열정을 가지고 100개만 때려도 대충 1,000개를 때린 선수보다 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훌륭한 감독이 되는데 필요한 것은 존경을 받을 만한 자세와 인내심인 것 같습니다."

A 선수의 짧고 인상 깊은 강의가 끝나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공감을 표시하였습니다.

"한국 리더십과 미국 리더십에 많은 차이가 있네요." "제가 지난주에 한 모든 일은 한국 코치가 한 일과 같았습니다. '이게 뭐니' 라고 야단치고 지시한 것이 전부였지요." "한국 사람에게 창의력이 부족한 것은 부하의 발전을 인내심으로 기다려주지 못하는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B 원로 변호사께서 화제를 돌리셨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교수보다는 질문만 하라고 시키는 교수들이 더 많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생각하지 않으면 질문을 할 수 없거든요." 이야기가 코칭에서 교수법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C 회장님께서 받았습니다. "제가 고대에 가서 강의할 때의 일입니다. 장하성 교수님이 학장으로 계실 때 부탁을 받아 한 학기 강의를 하였습니다. 장 교수님은 학생을 200여 명 모아두었습니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장 교수님은 저에게 '강의 시간은 2시간 드릴 테니 한 시간은 강의하시고, 한 시간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주세요' 라고 하더군요. 제가 평소 2시간 강의를 하면 1시간 40분을 강의하고 20분을 질문받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래서 '질문 시간 1시간은 길지 않을까요' 하였더니 '질문이 많을 테니 1시간도 부족할 것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1시간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 졌습니다. 200명의 학생 중 약 180명 정도가 손을 들어 질문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저는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질문을 하지 않지요. 제 회사에서도 외부 강사를 모셔 특강을 하고 나서 질문하라고 하면 간신히 한두 명 강사의 체면을 살리려고 질문하지요. 여기에 포인트가 있는 것입니다. 창의력이란 결국 생각을 하는 힘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으니 질문을 하지 못하고 결국 창의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나는 어떤 코치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한국 투수 코치입니다. 직원들이 해 온 것이 틀렸을 경우, 질문하여 스스로 생각하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매직 펜을 들고 칠판에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침묵이 흐릅니다. 아마도 직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겠죠. "또 강의 시작이네. 언제 저 강의가 끝날까."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결합한 신조어를 아시나요. 위키피디아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2010년 《뉴욕 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바 있고 레베카 솔닛이라는 여성 인권운동가는 같은 이름의 책을 낸 바도 있습니다. 그녀는 이 현상을 일부 남성의 "과잉 확신과 무지함"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마도 저는 맨스플레인 증후군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진단이 되었으니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Mansplain에서 Mansk로 바뀌어야겠습니다. 눈치채셨나요. Mansk는 Man(남자)와 Ask(질문하다)를 결합하여 제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오늘의 이야기에 이 신조어를 대입시켜 보면 한국 코치는 Mansplain의 달인인 반면 미국 코치는 Mansk의 달인인 것이지요. 남자들이 Mansplain의 오명을 벗고 Mansk의 달인이 되어 위키피디아에 이 단어가 등재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6.4.2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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