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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번째 편지 - 내가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국퍼를 하는 이유

내가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국퍼를 하는 이유

  여러분 ‘밥퍼’라고 들어보셨지요. 최일도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노숙자를 위한 급식봉사를 말합니다. 그러면 혹시 ‘국퍼’라고 들어 보셨나요. 제가 76번째 월요편지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 혹시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12시부터 12시 반까지 법무연수원 식당에서는 저를 비롯한 4명의 간부들이 배식대에 서서 200여명의 교육생들을 위해 국을 퍼줍니다. 제가 법무연수원장으로 부임한 지난 2월부터 시작하였으니 4개월 정도 국퍼를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국퍼를 하자고 하였더니 다들 의아해 하였고 퍽 어색해 하였습니다. 아마도 원장이 한두번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국퍼에 참여해 본 간부들도 제법 많습니다.

  국퍼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저를 비롯해 4명의 간부들이 4줄로 서서 국그릇과 국자를 들고 교육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국을 퍼줍니다. 그냥 단순히 국만 퍼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의 소개를 합니다. 저는 ‘원장입니다.’라고 소개를 하지요. 그리고는 무슨 교육을 받고 있는지 교육은 받을 만한지 물어보고는 많이 드시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국을 퍼주는 시간은 10초도 안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들은 정성껏 교육생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저희들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저는 작년 여름 휴가를 이용하여 어떤 신앙캠프를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캠프는 3박4일 동안 자원봉사자의 힘으로만 운영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다 감동이었지만 특별히 저에게 감동을 준 것은 매 식사시간마다 자원봉사자들께서 식사봉사를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밥퍼, 국퍼, 반찬퍼를 모두 해 주셨습니다. 그 자원봉사자들은 사회적으로 대단한 직분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는데 그곳에서 매우 즐겁게 봉사를 하셨고 봉사를 받는 저희들도 매 순간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체험하고 저도 직원들에게 이런 봉사를 해주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퍼가 생각만큼 간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구상을 이야기 하였더니 당시 부산고검 간부들께서 이런 저런 일리 있는 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직원들이 불편하여 고검장님께서 국퍼를 하시는 날은 식당 이용이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고검장님께서 국퍼를 하시면 다른 간부들도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등등의 걱정이었습니다. 결국 부산고검에서는 지난 1월4일 떡국을 직원들에게 퍼주는 단발성 행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법무연수원에서 국퍼를 해보니 당초 우리가 예상하던 걱정보다는 좋은 면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직원은 일부러 제가 퍼주는 국을 먹기 위해 제 줄에 섰노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고 국퍼를 하다가 아는 검사나 직원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만남이고 놓칠 수 없는 경험입니다. 직급이 올라가다보면 점점 직원들과 만나는 기회가 줄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을 하러 갑니다. 복지기관에 식당봉사나 청소봉사를 하러 가지요. 이름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드립니다. 물론 이런 봉사활동이 매우 중요하고 그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봉사를 저희 직원들을 위해서는 왜 못할까. 낯모르는 분들에게 하는 봉사보다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감동이 더 진하지 않을까. 이것이 국퍼를 하게 된 이유입니다.

  사실 저는 법무연수원의 국퍼 행사를 매일 하고 싶습니다. 다른 간부나 직원들이 우리 법무연수원을 찾아 준 교육생들을 위해 국퍼 봉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법무연수원에 ‘국퍼 연수원’이란 별명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욕심을 자제하였습니다. 늘 그렇듯 아무리 좋은 개선안도 구성원들의 진정한 지지 속에 추진되지 않으면 제가 원장을 그만둔 후 곧 바로 없어질 테니까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해 국퍼를 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일 수도, 자녀들일 수도, 부모님일 수도, 직원들일 수도 있지요. 저는 이번 주말 가족들을 위해 국퍼를 해 볼까 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6.2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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