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341번째 편지 - [정치 전문가가 정치를 하는 시대]를 꿈꾼다


'아웃소싱' 잘 아시죠. 기업 내부의 일부 활동을 제3자에 위탁 처리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기업이 전산 업무를 하는 경우, 기업 규모가 작으면 전산직원을 뽑아 전산실을 운영하는 것보다 전산업무 전문 업체에 전산업무 자체를 아웃소싱하는 것이 비용이나 전문성 측면에서 월등히 낫습니다.

이 경우 기업은 계약 시점에만 어느 업체에 아웃소싱을 줄지 고민하면 됩니다. 당연히 아웃소싱 입찰에는 전산업무 전문 업체만 참여할 것이고,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도 전산업무 전문 업체 중에서 제일 잘하는 데를 골라 아웃소싱할 것입니다. 만약 전문성이 없는 업체에 아웃소싱하였다가는 자신이 직접 전산업무를 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를 모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국가 정책을 위한 법률안을 만드는 일을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 정치 전문가가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하여야 할 정치를 아웃소싱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대신 저는 세금이라는 형태로 비용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정치를 아웃소싱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접민주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 라고 부릅니다. 국민이 개별 정책에 대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해 의회를 구성하여 정책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본질은 국민이 정치를 아웃소싱할 전문가를 선거라는 형태로 찾아 4년간의 정치 아웃소싱 계약을 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매우 어려운 고도의 전문가 영역입니다. 사회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항쟁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활동입니다. 저와 아웃소싱 계약을 맺은 정치 대리인은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저의 견해를 대변하고 저의 주장을 관철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지에 능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변호사는 로스쿨 3년의 과정을 거친 후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의사, 회계사, 변리사, 건축사 등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은 일정 기간 전문가가 되기 위한 수련을 쌓습니다. 저의 정치 권리를 아웃소싱 받겠다는 전문가 후보들은 당연히 정치에 대해 전문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의 각 당 공천 과정은 그런 정치 전문가를 찾는 과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천 과정을 보면 어떤 특정 분야에서 상당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면 정치를 잘할 전문가로 간주하고 공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분들이 정치에 얼마나 전문성이 있을까요? 저는 검사로 30년을 지냈습니다. 저는 법률 분야 그것도 좁게 말하면 검찰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이런 제가 아무런 교육 과정도 거치지 않고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면 잘할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아웃소싱 한 분의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그럴 수 있겠지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19번 국회의원을 뽑았습니다. 이번이 20번째입니다. 제법 긴 국회의원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 모두가 정치에 대한 아웃소싱 계약을 잘못한 것입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전산업무를 아웃소싱하기 위해 전산업무 전문가를 찾았는데 회계업무나 요리업무 전문가를 뽑은 셈입니다. 후보자 대다수가 전산업무 비전문가들이라 어쩔 수 없이 그중에서 뽑고 만 것입니다. 그나마 후보자들 중 전산업무를 아는 사람은 기존에 전산업무를 아웃소싱 받아 4년간 수행한 사람이지만 업무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교체하려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는 형국이지요.

마음 같아서는 국회의원이 되려는 신인 정치인들은 최소한 1년은 정치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일정한 시험을 보아 자격을 갖추게 한 다음 자신의 지역구에서 1년은 봉사하면서 밑바닥 정치를 경험하게 한 후 후보자가 되게 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과격한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넋두리를 듣고 있던 언론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줍니다.

"여야 모두 이번 공천에서는 상향식 공천을 일정 부분 적용하였어요. 잘 알다시피 상향식 공천은 당 지도부에서 어디에 누가 나갈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국민과 당원들의 투표에 따라 어느 지역에 누가 나갈지 결정하는 것이지요. 상향식 공천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기득권을 가진 현역 국회의원이나 거물급 신인들이 유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뚜껑을 열고 보니 현역 국회의원이나 거물급 신인들이 경선에서 패배한 사례가 꽤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이들을 상대로 경선에서 승리한 사람은 하나같이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지난 4년간 지역을 훑고 다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조 대표의 논리대로 하면 4년간 정치 현장 교육을 받은 것이지요. 정치가 무엇인지 왜 정치가 욕을 먹는지 현장에서 체험한 분들이니 국회의원이 되어도 잘할 겁니다. 이번에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성장한 것입니다. 이 상향식 공천은 명분이 있어 후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21대 때는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100% 공정한 상향식 공천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면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은 정부 고위직을 하였더라도 지역에 들어가 유권자를 만나며 바닥을 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분들은 훌륭한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정치는 현장에서 유권자와 희로애락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조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국민의 정치권리를 아웃소싱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4년에 딱 한 번만 정치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정치 권리 아웃소싱 계약을 할 때 말입니다. 그런데 아웃소싱 후보자들이 대부분 비전문가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중 나은 후보자와 아웃소싱 계약을 하지만 4년간 불안 불안하게 지냅니다. 정치 전문가이면 마음 놓고 맡길 텐데 사정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져봅니다. 언론인 친구 말대로 한국 정치가 나아질 조짐이 보입니다. 정치 전문가가 정치하는 시대. 정치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기는 사회. 꼭 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실 월요편지에서 현실 정치 문제를 가급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월요편지를 토론의 장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하도 답답해 넋두리 한번 해보았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6.3.28.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