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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번째 편지 -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입니다.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입니다.

  대운동장에서는 40명 정도의 교육생이 축구감독의 지도에 따라 2인 1조를 이루어 패스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1시간여의 연습을 마친 교육생은 2팀으로 나누어 전후반 20분짜리 축구시합을 하였습니다. 모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팀 동료 간에 팀워크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각 그 옆의 족구장에서는 20명이 모여 족구에서 사용되는 각종 기술을 배우고 연습 하고 있습니다. 연습이 끝나자 족구장 2면을 이용하여 미니 족구경기에 돌입하였습니다. 한쪽은 그저 그렇게 시합을 하였지만 다른 한쪽은 상당히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발을 들어 스파이크를 넣는 모습이 선수 급이었습니다.

  이 무렵 대강당과 소강당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대강당 무대에서는 교육생 10명이 스포츠댄스 강사의 지도에 따라 기본자세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꼿꼿이 하고 걷는 기본자세가 그들에게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대강당 무대에서 스포츠댄스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흥분을 느꼈습니다.

  소강당에서는 지휘자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난타와 음치클리닉’. 오늘 수업의 명칭입니다. “여러분 왜 음치가 되는지 아십니까? 엄마가 음치면 아이가 음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태아 때부터 엄마의 뱃속에서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음치라도 아기 때부터 방안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계속 듣게 하면 음에 대한 분별력이 생겨 노래를 잘하게 됩니다.” 흥미 있는 강의가 끝나자 실전에 들어갔습니다. 모두 무대에 올라 미리 준비된 각종 북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두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법 박자가 맞아 들어갔습니다.

  소강당 옆에 마련된 요가실에서는 교육생 40여명이 요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몸을 활처럼 휘며 요가의 한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굳어 생각만큼 잘 따라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선생님보다 더 잘할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야외 국궁장에는 50여명이 모여 진지한 국궁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수준급인 고급반 교육생 5명은 제법 화살을 잘 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145미터의 과녁을 맞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옆에서는 30여명의 초보자들이 활을 들고 기본자세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활을 처음 만져보지만 진지함은 선생님의 수준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일부 기다리는 교육생들은 비디오를 통해 국궁 기본교육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광경이 무슨 광경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어느 체육대학교의 수업 모습처럼 느껴지십니까? 이 모습은 지난 주 수요일 오후 3시경 법무연수원의 수업 모습입니다.

  법무연수원에서는 2주전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1시반부터 5시반까지 4시간 동안 예체능클래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 과정 교육생 약 180명을 통합하여 그들이 원하는 종목을 선택하게 한 다음 30~40명 단위로 나누어 예체능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종목마다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1시간 정도는 실내에서 이론 교육을 하고 1시간 정도는 야외에서 훈련을 쌓은 다음 나머지 시간에는 종목에 따라 시합을 하거나 심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어떤 강연에서 ‘지·덕·체’ 순서의 한국교육을 ‘체·덕·지’ 순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근거로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이론을 들었습니다. 존 로크는 1693년 펴낸 ‘교육에 관한 몇 가지 단상’에서 학생들이 길러야 할 것으로 첫째 체력, 둘째 위기관리능력, 셋째 창의력, 넷째 대담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공부를 가르치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존 로크의 이론을 적용한 학교가 바로 그 유명한 영국의 이튼 스쿨입니다. 19세기 초부터 ‘체·덕·지’의 교육철학을 접목한 결과 지금까지 영국총리를 10명이나 배출하는 등 세계적인 리더들의 산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체육이 체력만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전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뿐 아니라 침착함, 자기극복, 공정함, 다른 사람의 성공을 함께 축하할 수 있는 아량과 관용 등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강연을 듣고 이를 법무연수원 교육에 적용해보기로 마음먹고 시험 실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무연수원에는 훌륭한 체육시설이 있습니다. 타탄트랙과 잔디축구장이 갖추어진 대운동장, 체육관, 족구장, 요가장 그리고 국궁장 등 다른 교육기관이 부러워할만한 시설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간 이 시설을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여 왔습니다.

  이번의 시도가 잘 정착하여 효과를 거둔다면 법무연수원 교육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제가 희망하는 효과는 이렇습니다. 먼저 존 로크가 주장한대로 체육을 통해 다양한 덕목을 익힐 수 있을 것이고 팀워크를 통해 협동심과 리더십도 키우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성인인 교육생들에게 평소 잘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운동에 대한 중요성과 흥미를 일깨워 교육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자신이 배운 예체능클래스를 계속 해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주째 국궁클래스를 듣고 있는 어느 검찰사무관은 첫날 국궁클래스를 듣고 너무 재미있어 집에 가서 바로 인터넷 국궁동호회에 가입하였다고 합니다. 벌써 효과가 나타난 것이지요.

  여러분 평소 체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오늘의 주제는 조직이건 개인이건 직무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체육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동의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6.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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