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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번째 편지 -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 출장중이라 월요편지가 월요일에 배달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5월9일 한국을 출발하여 뉴욕, LA를 거쳐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고 내일 귀국할 예정입니다. 이번 출장 목적은 2014년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는 법무연수원 건축을 위해 각종 교육시설을 견학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지시각으로 월요일인 5월16일 아침 8시20분 저는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이륙을 준비 중인 텔타 항공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승객들이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 기내방송을 듣지 못한 저는 옆자리 승객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 보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기상상황이 나빠 2시간 연발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승객들이 탑승구 옆 카운타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 같이 보이는 신사 분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비행기가 바뀌기 때문에 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직원으로부터 들은 설명에 따르면 상황이 심각하였습니다. 바뀌는 표는 오후 4시50분 비행기이고 그전에 출발하는 오전 11시35분 비행기에는 대기자 명단에 올려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자가 얼마나 되냐고 하였더니 많다고만 하였습니다.

  잠시 후 바뀐 카운타에 가서 과연 11시35분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물었더니 불가능하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이때 시각이 10시, 4시50분까지 무려 7시간을 공항에서 꼼짝없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오후로 예정된 시스코 방문도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신사분이 자신은 렌트카를 빌려 샌프란시스코까지 갈 계획이라고 하면서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의하였습니다. 얼마나 걸리냐고 하였더니 7-8시간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순간 멈칫 하였습니다. 7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낯선 여행을 할 것인지 갈등이 되었습니다. 7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리면 짜증도 나고 답답할 텐데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운전을 하여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미국 서부 1번 국도를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차피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도전하는 길을 선택하자고 결심하였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듯이 어차피 샌프란시스코를 제 시간에 가는 것이 틀어져 버렸다면 이 상황을 화낼 일이 아니라 즐겨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처음 만난 분과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통성명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대학교 때 유학와 미국에서 계속 살고 있는 분으로 ING 생명보험 아시안 마켓 담당 부사장님이었습니다. 우리는 태평양을 왼쪽에 두고 북으로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스스로에게 탁월한 결정을 하였다며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대학 중 캠퍼스가 가장 아름답다는 페파다인 대학교도 지나고 영화배우들이 많이 산다는 말리부 해변의 고급주택가도 지나쳤습니다. 햇살은 태평양 파도에 부서져 은빛 물결되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리조트들이 많이 있는 피스모비치의 돌핀베이 리조트내 리도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피스모비치까지는 태평양 해안을 따라 1번 국도로 달렸고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해변을 볼 수 없는 101고속도로를 따라 북향하였습니다.

  처음 만난 분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분이 들려준 보험회사에 취직하여 30년을 지낸 이야기, 네덜란드계 회사 ING 생명보험의 임원으로 지내면서 겪는 애환, 소방관이 되었다가 부상을 입고 퇴사한 아들 이야기,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딸 이야기 등 보통 한국 기업 임원들이 가진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기업경영 쪽으로 흘러 제가 행복경영을 이야기 하면서 직원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하였더니 그분은 미국에서는 임원들이 직원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번은 한국인 2세 여자직원이 점심으로 며칠을 김치찌개를 싸가지고 와 전자렌지에 데워 먹기에 자신이 여직원에게 김치찌개는 냄새가 나니 싸오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본사 인사부서에서 감사가 나와 그 사실을 문제 삼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해명은 되었지만 그 후로는 정말 말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

  고속도로라지만 한국의 고속도로와는 달리 가드레일이 없이 넓은 평지를 달리게 되어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운전을 나누어 하며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덧 샌프란시스코에 접어들었습니다. 검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식당에 도착한 것은 7시반. 8시간반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입니다. 낯선 여행을 우연히 함께 한 낯선 분과 아쉬운 이별을 하였습니다. 기분이 묘하였습니다.

  인생이 이렇게도 전개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침에 공항에 도착할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특별한 여행을 한 것입니다. 만약 도전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결코 선택하지 못하였을 카드였습니다. 그러나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살게 될 나의 인생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수없이 많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저는 또 두개의 카드 중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특별한 경험이 저에게 좀더 도전적인 선택을 하도록 힘을 줄 것입니다. 그 선택이 항상 최선은 아닐지라도 저는 즐길 것입니다. 제가 즐기면 그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5.1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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