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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번째 편지 - 인생 공부와 [루첼라이 정원]

 

지난주 월요편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공부의 방향성] [공부계획] [결정적 지식] 등 개념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해법을 가르쳐 주었다' 며 고마워하셨습니다. 저는 이 반응을 보고 많은 분들이 공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2011년 검찰을 떠나 민간인이 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공부에는 언제나 스승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스승은 강의를 통해 만나기도 하고 그가 쓴 책을 통해 만나기도 합니다. 저의 스승은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님이십니다.

검찰을 떠나고 보니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나는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검사로 살 때는 삶의 방향이 [정의 추구]로 정해져 있었고, 제가 할 일은 그 방향에 맞춰 빨리 달리는 것, [삶의 속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퇴직하자 저에게는 많은 [삶의 방향]이 제시되었고, 저는 [변호사]라는 방향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2012년 여름, 김상근 교수님의 '인문학이 밥 먹여 주나'라는 강의를 듣고 '제가 선택한 삶의 방향이 저에게 맞는 것인지', '제 속도가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즉, 'How to live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어느 날 서점을 찾았습니다. 저는 우연히 제 고민과 똑같은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버렸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적은 2012년 10월 8일 자 월요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그 책은 사라 베이크웰이 쓴 ‘How to live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사라 베이크웰은 20년 전 부다페스트 헌책방에서 우연히 몽테뉴의 수상록 영어본을 만나 그 후 자발적으로 수상록의 노예가 됩니다. 수상록을 연구하여 몽테뉴의 삶과 사상을 재편집하여 쓴 책이 ‘How to live’입니다."

"선 채로 몇 페이지를 본다는 것이 수십 페이지가 되어 버렸고 그 순간부터 저 역시 ‘How to live’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통해 몽테뉴의 수상록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였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늦게 수상록을 알게 되었는지 후회스러웠습니다."

그 책을 단숨에 읽고는 [수상록]에 도전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완역본이 동서 문화사에서 2007년 출간한 손우성 번역의 1,330페이지짜리가 유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번역은 매끄럽지 못해 몇 번을 다시 읽었고 2012년 여름은 그 책과 씨름하느라 더운 줄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가을, 제가 속한 미술 공부 모임에서 김상근 교수님을 모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공부는 자연스럽게 르네상스 시대에 꽃피워진 인문학 Humanitas로 옮겨 갔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제 고민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만나 열심히 읽은 책이 스티븐 그린블랫이 쓴 [1417년, 근대의 탄생]이라는 책입니다. 1417년 독일의 수도원에서 당시 금서이던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를 자세히 묘사한 책입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사물의 본성을 탐구하였던 로마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고, 그 생각의 뿌리인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졌습니다. 헬레니즘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끝에는 'Who am I?', 'What is life?', 'How to live?'라는 세 가지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독서만으로 그 질문의 답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읽어야 하는 책 대부분이 고전이라는 것이 더더욱 문제였습니다. 고전 리스트 맨 위에는 으레 '일리아드' '오디세이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제목은 알지만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책, 바로 그 책들입니다.

그때 우연히 고전을 속성으로 공부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2015년 7월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 프로듀서인 친구 강신장 대표가 자신의 야심작 [고전5미닛]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고전을 5분 만에 읽을 수 있게 동영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저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매일 [고전5미닛]을 몇 개씩 보았습니다. 한 100편쯤 보았을까요. 처음에는 5분짜리 영상으로 대만족하였지만 사람은 본래 간사한지라 점차 감질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전5미닛]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전 원본을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간절함은 기적을 낳는다'는 말처럼 고전을 읽고 싶은 간절함을 해결해 줄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2016년 봄 어느 날 강신장 대표, 김상근 교수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서로 의기투합하여 고전 공부 모임을 만들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기획 강신장, 강의 김상근, 응원 조근호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 5반에 총 300명의 공부 모임으로 발전한 [루첼라이 정원]입니다. [루첼라이 정원]은 메디치 가문을 만든 코시모 데 메디치가 시작하여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계승하였다가 그가 죽고 루첼라이 가문이 이어받은 고전 공부 모임의 이름입니다.

2016년 가을, 첫 학기를 시작한 루첼라이 정원은 현재 6학기째 공부하고 있습니다. 매 학기 10강, 고전을 발췌독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제 생애 읽을 것 같지 않던 그 고전을 꽤 읽었습니다. 강신장 대표가 최고의 기획을 하면 김상근 교수님이 최고의 강의를 해주십니다.

1학기에는 서양 기본 고전 14권, 2학기에는 로마사 및 로마 고전 11권, 3학기에는 게르만 고전 명저 10권, 4학기에는 인도 고전 명저 10권, 5학기에는 셰익스피어 명저 10권을 모두 김상근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습니다.

[한 분의 스승께서 똑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5학기 동안 총 55권의 고전을 가르쳤다는 사실]은 인류 지성사에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과연 한 사람이 그 많은 고전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김상근 교수님은 신학 전공이십니다.

그러나 그 강의를 전부 들은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저희는 전공자가 아닌 일반 교양인입니다.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을 것입니다. [루첼라이 정원]의 목표는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질문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55권의 고전을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듣는 것보다 저희와 고민을 공유하는 한 스승으로부터 그 고전에 있는 핵심 구절을 뽑아 강의 듣는 방식이 훨씬 좋았습니다, 매 강의마다 감동이었습니다.

2012년 여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저의 공부는 이렇게 방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공부한다고 다 이해하는 것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무엇을 다시 공부하여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5학기 동안 인생을 고민할 화두를 수없이 던져주신 김상근 교수님께 이 편지를 빌어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친구 강신장 대표에게도 우정어린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오늘 제 공부 역정을 소개해 드린 것은 공부에 대한 갈증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려는 생각에서 쓴 것입니다. 공부는 지루하고 외로운 길입니다. 독학도 좋지만 좋은 스승과 친구가 있을 때 더 열심히 매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복한 학생이고 제 공부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5.13 .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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