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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번째 편지 - 여러분 가슴속에는 무슨 색깔이 감춰져 있나요

여러분 가슴속에는 무슨 색깔이 감춰져 있나요.

   지난 토요일(4월2일) 법무연수원은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전국 검사장 워크숍이 있어 검찰총장님과 고검장, 검사장 전원이 법무 연수원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법무연수원으로서는 개원 이래 가장 큰 행사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전 직원 모두 합심하여 준비해준 덕분에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월요편지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행사의 성공에는 우리가 1개월여 고생하여 법무연수원 일부 시설을 리모델링한 것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검사장들께서는 환하고 호텔 로비처럼 격조 있어진 연수원 로비를 보시고 다들 놀라셨습니다. “법무연수원이 확 달라졌네요.” 모두 이구동성으로 건네는 인사였습니다. 저는 내심으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검사장들을 2층 휴게실로 모시고 가자 탄성이 터졌습니다. 복도를 이용하여 만든 카페식 휴게실에서 검사장들은 발길을 떼지 못하고 다들 한마디씩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옥상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에 다시 한 번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그밖에 대강당 앞, 소강당 앞 그리고 세미나실까지 우리가 이번에 노력하여 만든 각종 시설물에 대해 이것이 바로 변화요, 개혁이라고 좋은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번에 법무연수원의 일부 시설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법무연수원의 기존 이미지에 부합하게 점잖은 색으로 리모델링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을 꿈꾸던 그 디자이너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 로비와 대강당 앞을 검정색으로 인테리어를 하였습니다. 다만, 너무 밋밋하다는 이유로 대강당 앞 빈 공간에 있는 기둥에 변화를 주어 사선 기둥으로 만들고 파격적으로 빨간 색을 칠하였습니다. 저는 그 빨간 색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검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직원 모두가 검정색과 빨간색을 보고는 모두 검정색은 상가집 분위기를 낸다며 싫어하고 빨간색은 생동감이 있다며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나머지 인테리어도 무채색 계열이 아닌 원색 계열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하였습니다. 저는 난감하였습니다. 과연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깔을 칠한 법무연수원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평가할까? 혹시 원장이 정신 나갔다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수없이 공사현장을 다니며 과연 밝은 색을 써도 좋을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려 과감히 원색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전국 검사장 워크숍에 참석한 검찰 고위 간부들이 이 선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 줄지 긴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최고의 찬사를 해주시고 오찬 석상에서는 전임 원장이신 박용석 대검차장께서 ‘변화’에 경의를 표하시며 원장인 저를 위해 참석자들에게 박수까지 유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합니다. 물론 우리는 노력하여 법무연수원을 바꾸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표적 결과물인 원색의 카페식 휴게실은 검찰답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이지요.

   저는 이번에 우리 검찰인 가슴속에 무채색 말고도 다른 색이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찰 공무원이 된 이래 우리는 검정색 양복과 구두, 흰색 와이셔츠, 튀지 않는 넥타이를 입고 신을 것을 요구받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위엄과 권위는 얻었지만 다양성과 친근함은 얻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는 빨간색도 노란색도 파란색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다만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외칠 기회를 얻지 못하였을 뿐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법무연수원 리모델링을 계기로 그 색깔들이 살아나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 나도 이런 색을 좋아하였지. 나에게도 열정의 빨간색이 살아 있었고, 도전의 노란색, 창의력의 파란색도 아직 죽지 않고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살아난 색깔들은 단번에 우리를 변화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꿈꾸게 하고 있습니다.

   회의 중간 휴식시간에 카페식 휴게실의 주황색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검사장들께서는 마치 휴양지 콘도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라며 일어나기 싫어하였습니다.

   색 컨설턴트 미미 쿠퍼는 ‘컬러 스마트’라는 책에서 “M&M 초콜릿은 새로운 색을 제품에 사용하고 나서 매출이 세 배나 뛰었다. 20가지나 되는 초콜릿 색상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만을 골라 먹는 사람도 있다. 또 애플이 5가지 색깔의 iMac을 발매한 후 가장 인기 있는 블루베리색은 포도색, 라임색보다 50달러, 오렌지색, 딸기색보다 100달러나 더 비쌌다.”고 색깔이 가진 힘을 소개하면서 그는 컬러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색이 소유한 긍정적인 힘을 신뢰하여야 하고 이어 색을 선택하는 기쁨을 익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색깔을 가슴에 감추고 사는 것 같습니다. 만약 연수원을 리모델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빨간색을 우리 스스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시나요. 혹시 그 취향이 조직의 논리로 강제화된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여러분 가슴속에는 여러분 자신도 모르는 어떤 색깔이 숨 쉬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4.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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