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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번째 편지 - 우리는 진정 자녀들의 멘토가 될 수 없는가

우리는 진정 자녀들의 멘토가 될 수 없는가?

  지난주 월요편지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제가 저의 완벽주의에 의해 상처를 입었을 제 아이들에게 사과한 편지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아버지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친한 대학 친구는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자식에게 상처를 주어 왔구나. 내가 나 같은 아버지를 가졌더라면 아마 나는 질식해 죽었을지도 몰라. 오늘부터 노력해 보아야겠네.”

  우리는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가능성을 끄집어내어 성장시켜 주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니까요. 그런데 결과는 반대인 모양입니다.

  고대 그리스 이타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면서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멘토’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오디세우스가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 ‘멘토’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돌보았을 것입니다. 즉, 아들에 대한 최고의 멘토는 원래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인 우리들은 멘토의 자격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도대체 멘토의 자격은 무엇인가요.

  어느 분은 멘토의 자격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멘토는 자신의 제자를 진정한 인격으로 대하여야 한다. 저는 이 점에서 부적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저의 악세사리 정도로 대하였으니까요. 둘째, 멘토는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고 마음이 열린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멘토는 제자가 지닌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멘토는 의사소통에 능하여야 한다. 저는 이 점에서도 부적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저의 의견을 이야기 하였을 뿐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위대한 탄생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멘토’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프로그램은 멘토 5명이 가수지망생 4명씩을 훈련시켜 경쟁을 거쳐 일부를 탈락시키고 결국 한 명의 최고를 뽑는 내용입니다.


  멘토 중에 가수 김태원이 있습니다. 저는 그를 예능에 재주가 있는 흘러간 가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내공이 매우 깊은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주 전 김태원은 탈락자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생에서 한 번에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소름끼치게 정확한 말인가요.

  그는 지난 3월4일 방송에서 제자 4명에게 “1등에 치중하지 말라.”고 하면서 “난 개인적으로 ''위대한 탄생''이 끝난 뒤의 너희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영원히 음악을 하면서 사는 그런 걸 원한다.”고 가수로서의 삶에 대한 자신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나는 멘토이지만 너희를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라고 멘토의 역할을 분명히 규정하고 “음악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거다.”라는 명언을 통해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김태원은 제자 4명의 파이널 심사 무대가 끝나자 각자에게 그들의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애정 어린 조언을 합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 늘 비장감에 젖어 있는 손진영에게는 “인생이 후렴만 있고 1,2절이 없어요. 앞으로 살면서 1,2절을 만들어야 됩니다.”라고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기를 주문합니다. 어릴 때부터 얼굴에 표정이 없는 이태권에게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마치 40년 후에 부르는 것 같아요. 너무 초월해 있어요. 헤어진 지 2-3년 지난 약간은 앙금이 남아있을 때의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습관을 들이세요.”라고 20세에 걸맞게 노래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목숨 걸고 노래하는 것 같지 않다는 평가를 들은 양정모에게는 “90년대의 남자 가수의 컬러입니다. 컬러에 대한 변화를 생각하세요.”라고 정확한 지적을 하였습니다. 소녀같은 외모를 지닌 백청강에게는 “두께는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창법에 두께를 더하면 좋겠습니다.”라고 그의 약점을 꼭 집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 2명을 탈락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탈락자 2명을 자신이 속한 그룹 부활의 생방송 무대에 세워 ‘마지막 무대’를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자신이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탈락자 2명은 탈락의 아픔과 멘토의 따뜻한 배려에 눈물이 범벅이 된 채 “노래, 끝이 났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 이 슬픈 노래”라는 가사를 차마 잇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요. 자녀들을 더 사랑하는데. 우리들이 김태원과 다른 점은 아마도 사랑이 너무 커서 자녀들을 인격체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보낸 편지에 아들이 이런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아빠의 완벽주의가 그래도 다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가끔씩은 도움이 되고 제가 더 노력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런데 밸런스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완벽한 것은 개성이 없는 것과 같으니까요. 사람이 모든 방면에서 잘하게 되거나 혹은 모든 방면에서 잘하려고 노력을 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발굴할 수 있는 부분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아들은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성숙해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제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3.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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