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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번째 편지 - 화천군 산소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만난 가을


가을이 벌써 끝나려나 봅니다. 지난 주말 비가 오면서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여러분은 이 멋진 가을을 어떻게 체험하고 계신가요? 매년 그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에 소리도 없이 갑자기 우리 곁에 찾아와 한 달 쯤 자기 멋대로 우리 가슴을 울적하게 만들고는 작별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그 가을 말입니다.

지난 9.10.11일 3일 연휴를 앞두고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3일을 골프에 바쳤을 텐데 <테니스 엘보> 때문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거든 화천댐을 꼭 자전거로 돌아보세요. 약 40km 정도 되는데 경치가 기가 막혀요. 은퇴 후 저희 부부가 자전거로 5년간 전국을 돌고 있는데 화천댐이 단연 최고예요. 특히 가을에 가면 그 아름다움에 정신이 나갈 겁니다. 꼭 가보세요." 지난번 금강을 자전거 종주할 때 어느 부부가 해준 조언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래 화천댐을 가자.'

9일 아침 이창용 과장이 운전하는 차에 자전거를 싣고 친구 윤건백과 저는 화천댐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단풍이 채 본격적으로 들지 않아 산은 여름이 만들어 준 푸르디푸른 신록의 옷을 꽉 움켜쥔 채 가을이 내민 색동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화천댐으로 인해 생긴 파로호를 한 바퀴 도는 <화천 산소길>은 42km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파로호 상류에 있는 딴산 유원지에서 출발하여 다리를 이용하여 파로호의 좌우 자전거길을 번갈아 타며 하류의 붕어섬 입구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까지 약 20km만 달릴 생각이었습니다.
 


상류 딴산 유원지에 있는 폭포에서 일단 인증 사진을 찍고 출발하였습니다. 파로호를 왼쪽에 두고 조금을 달리다 보니 까만 나무다리가 나옵니다. 이름하여 <꺼먹다리>.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된 다리랍니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꺼먹다리에서 상류를 등 뒤에 두고 찍는 인증 사진은 한폭의 그림입니다. 아마도 이래서 화천댐을 가보라고 한 모양입니다. 아직 자전거 타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꺼먹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와 파로호를 왼쪽에 두고 또 달립니다. 상류에 있는 꺼먹다리 길이가 204m니 파로호의 너비를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달리니 부교 위에 만들어 놓은 나무다리가 눈에 띕니다. 다리의 모습이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조금은 엉성한 그래도 나름대로 멋을 부린 다리입니다. 중간에 다리를 아치형으로 만들어 모양도 내었습니다. 제법 멋을 아는 사람이 만든 다리입니다. 그 다리가 유혹하는 대로 다리를 따라 강을 건넜습니다. 이제 파로호가 오른쪽에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나니 재미난 표지판이 눈길을 끕니다.


"<숲으로 다리> 이 다리의 이름은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 선생님이 2009년 10월 작명하여 주셨습니다. * 숲 속 길로 진입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막 다리를 건너왔는데 또 다리라니 그러면 그 부교 이름이 <숲으로 다리>인가? 그런 흔한 다리에 김훈 선생님이 이름을 붙이실 리가 없을 텐데. 이런 생각을 주절주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다리가 나타났습니다. 파로호 상류에서 하류로 가는 방향으로 파로호 좌안에 산길을 따라 테크로 만든 다리가 있었습니다. 이 다리를 <숲으로 다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다리는 편도 약 2km쯤 되고 다리 끝에는 숲이 이어진다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일러줍니다. 아하!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는 다리라는 뜻에서 <숲으로 다리>라고 작명된 것이었습니다.


테크로 만든 이 <숲으로 다리> 위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호숫물이 테크 목까지 거의 차올라 물 위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갑자기 호숫물이 일렁입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살랑거리던 물결을 이제 작은 파도가 되었습니다. 다리를 삼키려 달려듭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쪽배를 타고 가는데 거센 파도를 만난 느낌입니다. 파도를 보고 있으려니 섬뜩해 집니다. 눈을 돌려 다리 왼편을 쳐다봅니다. 다리와 산자락 사이에 고인 물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고 왼쪽은 고요, 그 자체입니다. 세상살이가 여기에서도 느껴집니다.

2km의 테크 위 라이딩은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가을 호수의 거센 파도를 헤치며 힘겹게 도달한 느낌이었습니다. <숲으로 다리>를 건너 산 길로 접어들자 이것은 또 다른 비경입니다. 아늑한 숲길은 가을을 제대로 맛보게 해줍니다. 파도에 시달린 몸과 영혼을 힐링해 주는 숲길. 가을과 팔짱을 끼고 걷다 보니 이제 제대로 가을을 체험하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끌고 가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 의외의 기쁨을 만끽하며 1km 정도를 걸었습니다.

산길을 벗어나 이제 편안한 자전거 길을 따라 제대로 라이딩을 해봅니다. 파로호를 오른쪽에 두고 계속 하류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강변에 시설을 해 놓은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디인가 보니 화천 생활체육공원입니다. 강에는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여럿 보입니다.


얼마를 달렸을까요. 마치 정원 속을 달리는 기분으로 한참을 달리다 보니 오른쪽에 멋있는 다리가 나타났습니다. 표지판을 보니 피니시 타워입니다. 이름이 하도 특이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찾아보았습니다. 화천군의 명소로 2007년 아시아 카누경기대회 당시 피니시 라인 기록계측 및 중계를 위해 설치된 건축물이었습니다. '아하! 그래서 특이한 이름인 피니시타워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구나.'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2007년 아시아 카누경기대회가 화천군에서 열렸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저 과거의 상식만 가지고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화천군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1993년 네덜란드, 벨기에를 여행하면서 작은 강가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복을 받아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며 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한없는 부러움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화천군이 그런 곳이네요. 은퇴하면 화천군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공원 같았습니다. 그 공원을 가을과 함께 자전거로 달린 것입니다.

조금을 달리다 보니 강변 공원을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지금도 아름다운데 화천 사람들은 성이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더 아름답게 강변을 재단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오후 2시입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걸은 시간을 빼면 자전거를 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 상쾌합니다. 골프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친구에게 그만 밥을 먹자고 제안합니다. 마침 눈앞에 또 다른 부교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는 영어 이름을 따서 폰툰다리(pontoon bridge)라고 합니다. 이 다리를 넘어 강 반대편으로 가서 식당까지 10여 분을 힘차게 라이딩 하였습니다. 역시 배고픔 앞에서는 아름다운 경치도 뒷전인 모양입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이 과장이 찾아 놓은 식당은 닭고기를 구워 먹는 특별한 식당입니다. 맛도 일품입니다. 자전거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맛집 기행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화천 산소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한 가을맞이는 그 어떤 가을맞이보다 가을을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어떤 다른 활동을 한 것보다 기분이 상쾌합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 만은 '맑음, 쾌청'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이 가을을 만나고 계신가요. 아직 남아있는 가을의 끝자락이 여러분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2015년 가을은 여러분 생애에 다시 만나지 못할 가을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10.1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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