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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번째 편지 - 인생은 성장하는가? 변화하는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목표를 세워 성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주위에 순응하며 변화하는 것일까? 이를 확인해 보고 싶어 제 첫 번째 삼십 대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1991년 처음 일선을 떠나 법무부 송무과 검사가 되었습니다. 1992년 오래도록 희망하던 스페인 유학을 갔고요.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1995년 첫 기관장인 영덕지청장이 되었고 1996년 대검에서 첫 번째 근무를 하게 되어 대검 연구관이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 대검 범죄정보과장이 되었습니다. 1997년 IMF 위기가 왔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제 삶은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직장에서 성장한 것이지요. 근무연수가 오래되어 [자연 성장]한 것도 있고 제 노력이 좋게 평가되어 [노력 성장]한 것도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특별한 기회를 포착하여 스페인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그러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삼십 대는 잘 산 것인가요? 다시 산다면 바꿔 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무엇이 잘못되어 나중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가요? 최선을 다했나요? 후회는 없나요?

누구나 더 좋은 보직에 가고 싶은 열망은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있습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어느 보직을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원하는 보직에 갔더라면 고검장까지 못 가고 중도탈락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스페인 유학은 어떤가요? 아쉬운 선택이었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하였더라면 두고두고 제 인생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듭니다. 영어에 도전하지 않고 스페인어라는 쉬운 길을 택한 아쉬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제 삶에서 직장이 전부이었을까요. 다른 부분에 대한 평가는 없는 것인가요? 자! 열거해 보겠습니다. 건강, 가족, 자산, 인격, 교양, 인맥, 신앙, 봉사, 여행 등 이런 부분에 대해 성장하였는지 아니면 그저 변화만 하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는가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평가를 해 본 적이 없어 가능한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런 시도를 해 보아야 지금 살고 있는 두 번째 삼십 대를 덜 후회하고 살게 될 테니까요.

첫 번째 건강입니다. 31세 때 건강이 어떠하였는지 데이터가 있나요. 35세 때는요. 아니 31세부터 40세까지 건강에 대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나요. 병원에 입원하였거나 사고가 났거나 하는 등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던 것입니다. 건강의 양대 축인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있었나요. 공부를 하여 지식을 축적하였을까요. 더 나아가 50대를 위해, 60대를 위해, 그리고 장수를 위해 30대 때 식이요법을 한 것이 있을까요. 꾸준히 운동을 한 것이 있을까요. 그에 대한 기록과 분석이 있을까요.

두 번째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아내와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나이를 먹고 학년이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그들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기여하였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주말에 무엇인가 하였을 것입니다. 딸이 87년에 아들이 94년에 태어났으니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딸아이는 3살부터 12살까지 아들 녀석은 태어나서 5살까지 살았습니다.

행복한 순간도 어려운 순간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중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들을 위해 노력하였겠지만 직장생활처럼 성장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아이들이 자라는 변화를 좇아 그때마다 무엇인가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하였을 것입니다. 일상이라는 것이지요.

세 번째 자산 부문은 어떠했을까요. 공무원을 살던 시기라 돈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막연한 불문율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를 저축하여 어떤 자산을 취득하겠다는 목표도 딱히 가질 수 없었고 그저 한 달 한 달 살아갔습니다. 자산의 성장에 아예 무관심하였습니다.

네 번째 인격 부문은 어떨까요. 저는 요즘 인생의 목표를 인격의 완성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합니다. 글도 그렇게 쓰고 강연에서도 대놓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서른한 살부터 마흔까지 저는 인격의 완성을 위해 무엇을 하였을까요. 인격의 완성이라는 개념에 관심조차 있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개념을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교양 부문은 어떨까요.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교양을 쌓는 행위는 사치입니다. 음악회, 오페라, 뮤지컬, 미술관 등을 가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더러는 가보았겠지요. 그러나 제가 교양을 성장시키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책도 읽었겠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독서 목표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은 것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중요한 분야라고 꼽는 9대 분야 중 지금까지 다섯 개 분야를 보았습니다. 남은 것은 4개 분야, 인맥, 신앙, 봉사, 여행입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저는 9개 분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2018년 1월 8일 자 498번째 월요편지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여섯 번째 인맥입니다. 저는 2001년 대통령 비서실 민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는 인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인맥이 검사 일을 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맥이 많으면 소위 마당발로 청탁도 많을 것이고 그러면 제가 검사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신앙과 여덟 번째 봉사에 대해서는 솔직히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언젠가 제가 한가해지면 신경을 쓸 분야였습니다. 아마 그 당시 인생의 중요한 분야를 꼽았더라면 이 두 분야는 리스트에 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보니 이 두분야가 정말 중요한 분야이더군요.

마지막 분야인 여행은 늘 '도피'였습니다. 여름 휴가철이 오면 일주일을 휴가 갈 형편이 되지 못해 4일이나 5일을 그것도 휴가 일정이 유동적이라 정기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닥쳐서 여행 계획을 세우니 늘 선택의 폭이 좁았습니다. 다행히 영덕지청장을 하던 무렵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어 동남아를 일상에서 도피하는 심정으로 다니곤 했습니다.

이렇게 훑어보았지만 직장생활을 제외하고 나머지 어느 분야도 제가 성장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고 기억에 남긴 분야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들어간 저의 유일한 직장 검찰만이 저의 삶의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신가요. 삼사 십 대인 분들은 아마도 제 이야기가 실감 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무슨 소리야. 뭐니 뭐니 해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지금 나머지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어. 직장에서 성공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속세적인 성공이라는 것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제 인생의 한 분야에서의 성공한 것이지요. 나머지 분야는 제 손아귀 밖에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는 제가 성장하려는 의지도 없었고 그러니 목표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때그때 변화에 따라가기만 하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 제 앞에 두 번째 삼십 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십 년을 어떻게 지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직장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첫 번째 삼십 대처럼은 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분야든 두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렵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목표를 세우고 가족관계도 성장 개념을 집어넣고 자산도 구체적으로 고민하렵니다. 인격은 어떻게 해야 성장하는지, 교양은 어떤 분야를 어떻게 목표를 가지고 성장시킬지 고민해 보렵니다. 이런 식으로 9개 분야 하나하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실천해가면서 달성하는 재미를 맛보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성장하고 계시나요? 아니면 그저 변화에 순응하고 계시나요? 어떻게 하든 여러분의 몫입니다.

오늘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4.2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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