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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번째 편지 - 수사는 예술인가요 아니면 과학인가요?

          수사는 예술인가요 아니면 과학인가요?

  저는 정부인사발령에 따라 오늘 자로 부산고검장직을 마치고 법무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28년간의 검찰생활을 통해 수많은 이별을 하였기에 이제는 둔감할 때도 되었으련만 여전히 가슴이 허전하고 시려옵니다.

  먼 옛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도 전 부산에 살고 있던 꼬마 조근호는 서울에서 친척이라도 왔다가 가버릴 때면 사람이 그리워 한없이 울고 며칠을 가슴앓이 하였습니다. 어릴 적 그 아픔이 가슴에 딱정이로 남아 오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이별을 이야기하면 그 상처가 덧나곤 하지요.

  누군가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이별이 더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부산고검에서 저는 너무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분들을 무던히도 사랑하였나 봅니다. 이토록 가슴 한 구석이 아픈 걸 보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부산 분들이 저에게 주신 따뜻한 마음과 해운대 바다가 저에게 남겨준 추억은 그 아픔을 더해주지요.

  그러나 늘 그래왔던 것처럼 겉으론 웃으며 떠나렵니다. 시리고 아픈 가슴은 저만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니까요.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별 준비를 미리 해둔 것입니다. 월요편지 사이트 www.mondayletter.com을 만들어 두었기에  비록 몸은 부산고검 검찰 가족과 헤어지더라도 여전히 월요편지를 통해 매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떠나는 마당에 여러분에게 ‘화두’ 하나를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수사’가 예술일까요, 아니면 과학일까요. 무슨 소리냐구요.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겠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예술은 같은 input을 넣어도 사람에 따라 output이 제각각입니다. 상상력과 창의성 때문이지요. 그러나 과학은 같은 input을 넣으면 실험하는 사람이 달라도 동일한 프로세스를 거쳐 같은 output이 나옵니다.

  그러면 수사가 예술인가요, 아니면 과학인가요. 저는 오래도록 아니, 지금까지도 수사를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사가 예술이 되면 법적안정성이 사라지고 중구난방이 되어버리지요.

  물론 수사하는 사람이 다를 경우, 과학실험처럼 100%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동일한 결과가 예측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의 관념에 부합합니다.

  수사와 비슷한 다른 분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70년대 하버드 로스쿨과 하버드 MBA 학자들을 중심으로‘협상 negotiation''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협상이 과연 예술인지 과학인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학자들은 협상이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전형적인‘예술’적 속성을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월리엄 유리, 로저 피셔, 브루스 패튼과 같은 학자들은 이에 의문을 품었습니다.‘협상’에도 일정한 원리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였습니다.

  그로부터 30-40년 동안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기술’인 협상에는 일정한 기법, 즉 원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것이 협상학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로스쿨과 MBA에서 필수과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수사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수사가 과학이 되려면 ‘수사’를 지배하는 원리, 법칙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그다지 연구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정립되면 수사의 공정성, 형평성도 더 확고해 질 것입니다. 금언과 같은 ‘수사 10계명’이 아닌 검증된 법칙으로서의 ‘수사 10계명’이 필요합니다.

  저는 법무연수원에 가서 이 화두를 잡고 지내보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검찰이 보다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으려면 누가 수사하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물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검사가 수사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원리가 있다면 보다 공정해 지겠지요.

  내주부터는 부산고검장이 아닌 법무연수원장의 자격으로 월요편지를 띄우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1.3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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