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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번째 편지 - 세번째 전 직원 해외여행

 

얼마 전 [나이테 경영]으로 유명한 일본의 이나식품공업을 다녀왔습니다. 이 회사의 경영자는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경영상 난제를 만나면 찾아가 자문을 구한다는 츠카코시 히로시 회장입니다. [나이테 경영]은 그의 경영철학입니다.

그곳에서 회사 소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두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회사 경영이란 저를 포함해서 사원들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목적입니다." 히로시 회장의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시(社是)를 "좋은 회사를 만듭시다. 씩씩하게 그리고 친절하게"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2008년 대전지검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오늘날까지 제가 맡은 조직에서 늘 강조해 오고 있는 행복경영과 판박이처럼 똑같았습니다. 2011년 2월 7일 법무연수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쓴 74번째 월요편지의 일부입니다.

"2008년 3월 대전지검장이 된 이후 어떻게 하면 검찰청을 잘 경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 만난 것이 바로 행복경영 철학입니다. ‘행복한 리더는 행복한 직원을 만들고, 행복한 직원은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는 것이 행복경영의 핵심입니다."

이나식품공업 관계자는 직원의 행복을 위해 회사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시책을 설명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전 직원 해외여행]이었습니다. 매년 500명의 전 직원을 해외여행시키고 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 계획은 회사가 아닌 직원들이 스스로 짜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습니다. 제가 행복마루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전 직원 해외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부터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첫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쓴 2017년 4월 11일 393번째 월요편지의 일부분입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 제가 박명찬 본부장께 드린 지침은 단 하나였습니다. '아무 부담 없이 그저 놀고 옵시다. 세미나 같은 것 하지 맙시다.' 회사가 적자만 안 나면 매년 가겠습니다."

이나식품공업을 견학하면서 "우리 행복마루도 똑같이 행복경영도 하고 전 직원 해외여행도 하는데 언제쯤 회사 규모가 이만큼 커질까?" 하는 생각을 또 하고 또 하고 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짐을 느꼈습니다.

지난 토요일부터 어제까지 2박 3일 동안 행복마루의 세 번째 해외여행을 전 직원이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여행 계획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상의하여 여행지도, 스케줄도 짰습니다. 여행 직전에 오사카, 교토, 고베를 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의도적으로 무관심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지난 두 번의 해외여행과 사뭇 달랐습니다. 세 번째가 되니 익숙해져 너무 편안했습니다. 기획자나 인솔자가 아닌 참여자로 편안하게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여행을 만끽한 것입니다.

다만 전 직원에게 한 가지 부탁만 하였습니다. 매일 여행 모든 과정을 담은 2, 3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줄 테니 내가 동영상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들이대면 피하지 말고 웃거나 손을 흔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직원들 모두 여행 기간 내내 이 부탁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첫날, 첫 번째 방문지로 찾은 오사카성은 벚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성안에 들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물을 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벚꽃 아래에서 서로 사진 찍어 주고 웃고 떠드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하였습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가느냐가 정말 중요함을 절감하였습니다.

저는 작년에 입사한 서채원 사원에게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얼마나 될까?" 하고 물었습니다. 즉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초속 5센티미터래."라고 이야기하였더니 그녀가 "아! 대표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이네요." 하고 화답해 옵니다. 서채원은 아는 것이 많아 회사에서 '서구글'로 통합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오사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도톤보리를 찾았습니다. 아들이 부탁한 애플의 신제품 에어팟 2세대를 사러 몇몇 직원들과 같이 갔지만 벌써 품절이라네요. 허탈해집니다. 이것 하나 사려고 했는데, 그래도 무엇 하나쯤은 사야 할 것 같아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인조가죽으로 만든 비니 모자를 하나 샀습니다.

집합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미리 도착한 직원들과 만났습니다. 검정 재킷에 검정 선글라스, 그리고 검정 가죽 비니를 쓴 제 모습을 보더니 모두 "레옹" 같다고 합니다. 킬러 영화 [레옹]에 나오는 주인공 레옹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말합니다. "마틸다가 있어야겠어요."

영화 속 12세 소녀 마틸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키가 좀 작고 귀여운 신입 여직원 강지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강지수 마틸다와 조근호 레옹이 한껏 포즈를 취했습니다. 모두 사진을 찍었습니다. 또 누군가가 이야기합니다. "마틸다가 들었던 화분도 있어야겠어요." 

 



정말 사소하게 비니 모자 하나로 한세대가 차이 나는 젊은 직원들과 한바탕 낄낄대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이 들뜬 기분은 저녁까지 이어져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모릅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전날 수액주사까지 맞고 감기약을 먹고 있었지만 직원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저도 모르게 엔도르핀이 나와 감기 기운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틀째 사흘째도 지난해와 달리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버스 뒷자리에 앉은 공채 신입 직원 5명이 만들어 내는 재치가 전 직원을 폭소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여중생들이 수학여행 온 것 같습니다. 이용훈 전무가 이 광경을 보고 저에게 한마디 합니다. "별것도 아닌데 정말 재미있게 노네요. 공채 신입 직원들이 여행 분위기를 확 바꿔 놓네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나식품공업의 [나이테 경영]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행복마루를 지난 8년간 운영해 오면서 더 빨리 더 크게 성장하고 싶어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니 경영철학은 행복경영에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저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영은 제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나이테 경영]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경영이란 달리 말하면 100년 후의 사람들을 위해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일본의 실천적 사상가인 니노미야 손토쿠는 이렇게 말했다. '멀리 보는 사람은 풍요로워질 것이며, 가까이 보는 사람은 빈곤해질 것이다.'"

저는 그동안 가까이에 있는 회사의 매출만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빈곤했나 봅니다. 반면 '행복마루의 전 직원 해외여행'은 행복마루의 100년을 바라보고 나무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멀리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행 기간 내내 마음이 풍요로웠나 봅니다.

이 전통이 곧바로 매출 증진과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제가 행복마루를 은퇴한 후에도 이 전통을 세운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래 가려면 천천히 가라"라는 히로시 회장의 경영철학이 가슴에 촉촉이 스며듭니다.

오늘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4.16. 조근호 드림

추신 : 전 직원 해외여행 때문에 화요편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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