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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번째 편지 - 침묵을 연습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침묵을 연습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지난 1월12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 총기난사사건 희생자의 추모식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 51초간 침묵을 한 것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오바마, 추모연설 51초간 침묵으로 미전역을 울렸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궁금하여 연설문 원문을 구해보고 유투브에서 동영상도 보았습니다.

  침묵과 관련된 연설 내용은 이렇더군요. 연설 말미에 총기난사로 희생된 9살 크리스티나 그린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잠시만 상상해보십시오. 이제 막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시민의 의무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언젠가는 자신이 미국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학생회 간부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녀는 공공서비스가 흥분되고 희망이 넘치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롤 모델이 될 여성 하원의원을 만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이 모든 것을 냉소와 독설을 내뿜는 어른의 눈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 소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아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미국이 그녀가 바라던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나라를 우리의 아이들이 꿈꾸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바마는 이 멋진 연설을 한 후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는 듯 보였습니다.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고 30초가 흐르자 그는 간신히 눈물이 촉촉이 배어 있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힘들게 말입니다. 그러고도 21초를 더 지난 후에야 그는 간신히 간신히 침묵을 깨고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시간을 잘 맞춘 침묵은 말보다도 좋은 웅변’이라고 했던 터퍼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이 침묵은 미국, 나아가 세계를 흔들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침묵하는 것에 의해 더 인간다워진다.’는 카뮈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습니다.

  어느 부인이 신부님을 찾아와 남편과 더 이상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하였습니다.“부인, 수도원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으십시오. 삼키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그날 밤, 늦게 귀가한 남편은 평소처럼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인은 얼른 물을 머금었습니다. 전에 같았으면 부인도 같이 대들었겠지만 물이 입에 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물이 새지 않게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떠드는 소리가 잠잠해졌습니다. 그날 밤, 싸움 없이 잘 수 있었습니다. 며칠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남편이 눈에 띄게 변하였습니다. 신경질도 줄고 부인을 친절하게 대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부인은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기적을 일으킨 것은 우물물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입니다.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부드럽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 결혼하신 분들은 부부싸움을 할 때 완전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가장 훌륭한 답변술이란 질문이 부질없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완벽한 침묵 앞에서는 질문이 기진맥진해진다.’

  간디는 매주 월요일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침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러 찾아 왔지만 간디는 월요일만큼은 명상을 하고 물레를 돌리고 책을 읽었습니다. 이것이 간디가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은 이유라고 합니다.

  ‘우리는 침묵을 지켜야만 신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고 애머슨은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마도 간디도 매주 월요일마다 신들의 속삭임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침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침묵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침묵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유안진 시인은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저는 최근 2주 동안 행사를 많이 하였습니다. 부산고검 산하 5개 청을 지도방문하고 청 내 행사도 자주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공허해 집니다. 기가 다 빠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저도 침묵을 통해 무엇인가를 충전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구정은 5일 연휴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침묵의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1.2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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