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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번째 편지 - 무한 질주에서의 은퇴인가? 참다운 삶으로의 복귀인가?


어제 8월 2일이 어머님 음력 생신이었습니다. 올해로 여든여덟. 허리 수술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저리신 것이 문제이지만 그런대로 거동하시는데 별 불편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하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외람되지만 그저 살아가시는 것이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식사하시고, TV 보시고, 화초 가꾸시고, 주무시는 것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생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인생은 무엇인가? (What is Life?), 어떻게 살 것인가? (How to live?), 과연 어머님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사실까요? 어머님 말고도 같은 또래의 어머님 친척분들은 또 어떨까요?

요즘 저는 직장에서 은퇴한 시기 이후의 삶이 참다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30여 년은 너무 바빠 인생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성공을 생각하고 출세를 꿈꾸느라 인생의 고민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청춘 시절, 20대 초반 방황하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였던 그 시절과는 달리 2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는 돈, 권력, 명예라는 소위 '지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팽개친 채 무한 질주를 합니다. 아내가 아파도 출근길에 '병원 가라'고만 할 뿐 아픈 아내의 손을 잡아줄 여유가 없습니다. 아이가 고3이 되어도 학원비를 마련해 주는 것이 고작일 뿐 고3짜리 아이의 손을 붙잡고 '힘들지'하는 말 한마디 건네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시절 모든 에너지는 돈,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한 '무한 질주'에 온전히 바쳐져 있으니까요. 어느 분들은 멈추면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맞는 소리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배부른 소리입니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추월당하고 마는데 어떻게 멈추느냐고요? 누구는 멈추어야 하는지 모르나요. 멈추면 무엇이 보이는 줄 모르나요. 그래도 못 멈춥니다. 부양하여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정은 가정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젊은 날,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 좋았습니다. 낭만이 있어 좋아한 것이 아니라 비 오는 날은 다른 아이들도 마음이 해이해져 공부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제가 공부하지 않더라도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일종의 광기 어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30년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하였다는 세 가지 질문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가끔 독서를 통해 그런 고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런 고민 하며 삶을 살기에는 삶이 너무 전쟁터 같았습니다.

그런 전쟁터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리는 '은퇴'라고 합니다. 직장을 그만둔 후 3~40여 년의 삶을 우리는 '은퇴한 삶'이라고 부릅니다. <'은퇴', 직책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 이것이 사전적 정의이지만 그 의미에는 직장 생활이 진짜 삶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 진짜 삶에서 밀려나 이제 잉여 삶을 산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니 대부분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이하고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어떨까요? 군대생활이 끝나고 '제대'를 할 때 군대생활을 아쉬워하며, 더 군대생활을 하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처럼 '은퇴'의 개념도 '제대'의 개념처럼, '제대'이후 진짜 인생이 펼쳐지듯, '은퇴'이후 진짜 삶이 펼쳐진다고 생각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진짜 삶, 참다운 삶이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인생은 무엇인가? (What is Life?), 어떻게 살 것인가? (How to live?)를 고민하고 사색하는 삶이라면 그런 삶은 인생의 무한 질주가 끝난 이후에나 가능한 것 아닐까요? 20대 때 세상에 나서기 전에 우리는 그런 시절을 잠시 살았었습니다. 누구나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던 청춘 시절, 그땐 '인생'이라는 두 글자에 가슴 뛰곤 했었지요. 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뇌하기 일쑤였지요. 무한 질주의 30년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복귀합니다. 그러니 <무한 질주에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삶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삶으로 복귀하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하루 종일 TV에 몸을 맡기고 시시껄렁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까요? 학자들이 찾은 해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학습>과 <봉사>입니다. 복귀자 스스로를 위한 <학습>과 다른 복귀자를 위한 <봉사>말입니다. 무엇이 되어도 좋습니다. 생계를 위한 학습이 아니라 참다운 삶을 알기 위한 학습이 필요합니다. 과연 우리의 부모 세대 중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렇게 살고 계실까요?

어머님 생신이라 모이신 70~80세대 친척들 앞에서 저는 이런 내용으로 강의 하였습니다. 제 강의를 다 들으시고 이종사촌 매형이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조 대표가 이야기한 대로 매일매일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 8시까지 국선도를 합니다. 건강에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8시에 집에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에는 서너 시간 서예를 합니다. 이제 붓글씨가 어느 정도 수준급에 올랐습니다. 점심 먹고 동네 이웃 20여 명과 매일 정기적인 모임을 하고, 그 모임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성경 공부를 합니다. TV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이런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노년의 사정이 다 같지 않겠지만 배우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문제에 일가견이 있는 청암 중고등학교 추상욱 이사장님과 통화할 일이 있어 이에 대해 의견을 여쭤 보았습니다. 청암 중고등학교는 젊은 날 가정 형편이 나빠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분들을 위해 60대, 70대, 80대에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게 해 드리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평생 교육을 받으면 평생 건강해지고 평생 행복해집니다. 저는 노인들을 상대로 교육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설문조사를 합니다. 노년에 공부하고 나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병원 가는 횟수가 줄었다고 하고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은퇴한 노인층 모두를 이 같은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노인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던 <학습 복지>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복지를 학습과 연계시키자는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국가가 노인 계층에 지원할 때 무상 지원을 하지 말고 공부를 몇 시간할 것을 조건으로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아직 설익은 생각입니다만, 추 이사장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 복지> 개념과 똑같다고 하시면서 반기셨습니다. 복지를 <학습>, 다른 말로 <교육>과 연계하자는 생각을 이미 하고 실행에 옮기고 계셨습니다. 저와 추 이사장님처럼, 세상에는 이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의 하루를 바라보며 가진 생각이 대한민국 노인 복지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제가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삶으로 복귀한 세대가 배우는데 자신의 시간을 바친다는 것은 정말로 의미 있는 일 같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님은 어떻게 은퇴 후 삶을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8.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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