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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번째 편지 -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습니까?


지난 7월 23일이 아내 생일이었습니다. 1986년 2월 14일 결혼을 하였으니 1986년 7월 23일부터 2015년 7월 23일까지 30번째 아내의 생일을 겪었습니다. 오랜 세월 같이 살았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도 둘이 태어나 모두 성인이 되었습니다. 재산도 어느 정도 형성하여 집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제 뒷바라지를 잘해주어 30년의 공직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홀시어머니도 잘 봉양하여 건강하게 지내십니다.

그러면 저에게 물어봅니다. 다시 태어나면 아내 이운한과 결혼하겠냐고 말입니다. 이런 식의 유치한 질문을 부부가 같이 있을 때 하면 아니라고 대답하기 곤란해 눈치 빠른 남편들은 큰 소리로 당연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아내보다 더 예쁜 여자도 많고 더 똑똑한 여자도 많고 더 착한 여자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아내와 다시 결혼한다고요. 아마도 남편들의 속마음은 아닐지 모릅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평생 속만 썩인 남편이 무엇이 좋아 다시 결혼하겠습니까? 세상에는 백마를 탄 왕자가 많은 것 같은데 말이죠.

이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보았더니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같이 결혼하겠다는 대답이 의외로 20% 선에 불과하였습니다. 어느 연예인이 거짓말탐지기 실험 중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큰 소리로 '예'라고 대답하였는데 거짓이라고 반응이 나왔답니다. 이 TV 프로그램을 본 아내가 남편에게 거짓말탐지기 실험을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하자 남편이 그런 것 안 해도 된다면서 자신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하겠다고 했답니다. 진짜든 거짓이든 이 말에 감동한 아내가 기분이 좋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남편에게 거짓말탐지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아내와 다시 결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혼의 본질이 무엇일까? 왜 인간은 혼자 살지 않고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동물은 발정기가 되면 서로 짝짓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를 키우게 될 때까지 같이 지냅니다. 사람도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어 이 부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지닌 자식을 낳아 험한 세상에서보다 더 잘 적응하고 오래 살도록 해 주고 싶은 본능 말입니다. 이 본능은 원시시대 때부터 있어 온 것으로 인간 내면에 깊숙이 각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관심이 있고 여자가 똑똑하고 우람한 남자에게 반하는 이유가 그런 상대방과 결합하여야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2세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남자가 결혼할 시기가 되면 외모에 신경을 쓰고 멋있어지는 것은 수컷 공작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날개를 세우는 것과 본질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결혼의 본질은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원시시대부터 이어진 결혼의 형태를 보면 그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원시부족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는 여러 가지 결혼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문화 상대적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학자들은 결혼에 사랑이라는 요소가 들어간 것은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전에 결혼은 비즈니스였다고 합니다. 정략결혼을 떠올려보면 결혼이 비즈니스였다는 사실이 수긍이 갑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상대방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집안끼리 혼사를 결정하곤 했었지요.

현대에 와서는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도 사실 호르몬의 작용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남자나 여자의 눈에 콩깍지를 씌워 상대방을 김수현이나 김태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도 과학에 의해 입증된 사실입니다. 서글프지만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18개월 정도라고 하지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신은 인간이라는 종족을 계속 번식시키기 위해 인간이 육체적으로 가장 절정에 이른 시기에 호르몬이 나오게 하여 그 호르몬의 유효기간인 18개월 안에 역시 호르몬에 취한 상대를 만나 서로 짝짓기를 하여 자식을 임신하게 하고 임신 기간 10개월 동안 남자가 도망가지 않고 여자를 부양하도록 프로그래밍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일이 18개월 안에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만약 인간의 회임 기간이 5년이면 호르몬의 유효기간도 그만큼 더 늘어났을 것 같습니다.

결혼을 이처럼 냉정하게 바라보면 결혼의 핵심은 '종족 보존'입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가 호르몬 작용으로 서로 만나, 멋지고 예쁜 2세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상대방에게 제공하고 동업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결혼입니다.

호르몬 작용에 의한 콩깍지가 18개월 후 눈에서 떨어지고 나면 그 옛날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한 부부와 별다른 차이 없이 그저 '정'이나 '의리'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여전히 '사랑'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호르몬 작용에 의한 '불타는 눈먼 사랑'이 아닌 사랑의 추억에 의한 일종의 습관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의 열병으로 동반자살도 하지만 그 18개월의 시기만 잘 지내고 나면 다른 배우자와 결혼하여 잘살게 되는 것이 결혼입니다.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도 이렇게 믿으시는 것이 전략상 유리합니다.

무슨 소리냐 구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 이운한과 결혼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스'라고 대답하기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스'라고 말입니다.

결혼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좋은 2세를 낳아 잘 키워 그들을 세상에 잘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조윤아' '조정민'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만하면 제 소임을 잘 수행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내 이운한 이외에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면 다른 아이들이 태어났겠지요.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었을지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조윤아' '조정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운한과 다시 결혼하지 않는다면 제 아이들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아내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다시 태어나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이운한과 결혼할 것입니다. '조윤아'와 '조정민'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 기쁨과 슬픔을 겪었던 아내 '이운한'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 '조근호'를 위해 저는 기필코 '이운한'과 결혼할 것입니다. 그녀가 저를 싫어 멀리 도망가더라도 기어코 쫓아 가 그녀를 납치해서라도 결혼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제가 왜 다시 태어나더라도 아내 이운한과 결혼하겠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아셨나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사실 이 이론이 맞지 않더라도 이 이론을 따르시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유리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부싸움만 불러일으키지요. 그런데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한다고 대답하려니 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럴 때 이 이론이 딱 맞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릴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7.2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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