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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번째 편지 - 거울 앞에 서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거울 앞에 서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사적인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지난 1월1일 저의 어머님께서 동생네 가족과 같이 아버님 산소에 가셨다가 팔목이 부러지셨습니다. 춥고 눈까지 내려 미끄러운 길에 굳이 산소에 가시겠다고 나선 것도 저는 속으로 탐탁지 않았지만 사고 경위를 듣고 보니 더 답답하였습니다. 산소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손녀들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가시겠다고 하다가 미끄러져 얕은 도랑에 빠지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을 잘 보살피지 못한 동생네 가족도 원망스러웠지만 어머님께서 고집을 부리신 것이 더 속상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님은 응급실 신세를 지셨고 전신마취 후 팔목 뼈에 철판을 대는 수술을 하셨습니다.

  저는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님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 누워계신 분은 아직도 자신의 주장이 강하시지만 이제는 늙고 힘없는 84세 노인이셨습니다.

  과연 그것이 어머님의 모습 전부일까요.

  저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스코틀랜드 던디 근처 어느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의 시가 양로원 간호원들에 의해 발견되어 북아일랜드 정신의학 잡지에 실렸습니다.

  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성질머리도 괴팍하고 눈초리마저도 흐리멍덩한 할망구일 테지요.

  먹을 때 칠칠치 못하게 음식을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나에게“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요!”소리 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 할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늘 양말 한 짝과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나’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나’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 제대로 바라봐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 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줄게요.

  저는 열 살짜리 어린 소녀랍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 언니, 동생들도 있지요.

  저는 스무 살의 꽃다운 신부랍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있는 아름다운 신부랍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어 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한 안식처와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있답니다.

  어느새 마흔이 되고 보니 아이들은 다 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어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눈물로만 지새우지는 않는답니다.

  쉰 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 위에 아가들이 앉아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행복한 할머니입니다.

  암울한 날이 다가오고 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 하고 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젊은 시절 내 자식들에 퍼부었던 그 사랑을 뚜렷이 난 기억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 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 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 그리고 이따금씩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쿵쿵대기도 한다는 것을.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 날들의 아픔도 기억해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 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봐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주어요.‘나’의 참모습을 말예요.

  저는 병실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님에게서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어머님의 30대, 40대, 50대의 모습을 찾으려 애를 썼습니다.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빛바랜 사진 속에 수줍게 웃고 있는 10대의 어머님 모습도 기억해냈습니다.

  할머니가 되신 어머님 속에는 저를 키우려고 애를 쓰시고 제가 잘되기를 빌던 그 젊은 날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살아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보지 못하였을 뿐이지요.

  저는 거울 앞에 섰습니다. 거울에 비친 50대 초반의 제 모습 속에도 공부만이 전부이던 10대의 학생이 살아있고, 청춘의 아픔을 느끼던 20대, 초임검사의 정열이 살아있던 30대의 제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깨닫지 못하였지만 말입니다. 저는 2011년을 그들과 함께 시작하렵니다. 제 안에 같이 살고 있는 10대, 20대, 30대의 저와 말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덜 두려워하고 덜 걱정하렵니다. 대신 더 모험적으로 더 열정적으로 살아보렵니다.

  여러분도 거울을 한번 보세요. 여러분의 가슴 속에 살고 있는 10대, 20대, 30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1.1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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