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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번째 편지 - 여러분은 어떻게 건배사를 하시나요

           여러분은 어떻게 건배사를 하시나요.

  저는 몇 년 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전임 부원장께 부원장의 주요 임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행사 때마다 건배사를 하는 것이 주요 임무라고 하였습니다. 농담이려니 하였는데 연수원은 행사가 많아 원장님이 한 말씀 하시면 부원장의 몫은 늘 건배사였습니다.

  건배사를 일주일에 서너 번씩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욕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건배사를 모두 공부하고 활용하였습니다. ‘당신 멋져, 당나귀, 진달래’ 등등 약자로 된 건배사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약자로 된 건배사는 한번 쓰면 멋있지만 자주 쓸 수 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꺼리를 찾아 짧은 이야기를 한 후 그 이야기 중 한 대목을 따서 건배 구호로 삼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하였더니 ‘건달’이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건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건배의 달인’이라더군요.

  지난 주 어느 분이 얇은 책을 보내 주셔서 30분 만에 읽었는데 저의 사법연수원 부원장 시절 고민을 해결해주는데 딱 맞는 책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스토리 건배사’입니다. 김미경이라는 유명강사께서 쓰신 책입니다. 너무 내용이 좋아 제가 표절 시비를 각오하고 몇 대목 옮기겠습니다. 곧 건배사가 난무하는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친구 결혼식에서 한 건배사랍니다.

  “이 친구가 얼마 전에 이런 얘길 하더군요. 자기 아내 될 사람이 김태희 보다 더 예쁘다고요. 콩깍지가 팍 씌운 거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2년이 지나면 다 벗겨진다는 거 아닙니까. 옛날에는 소신 있다고 하더니 이제는 ‘아, 완전 똥고집이야.’ 또 통이 크다고 좋아하더니 요즘에는 ‘왜 이렇게 낭비를 많이 하냐?’ 참 자상하다더니 ‘쫀쫀해서 못살겠다.’ 다들 이렇게 변합니다. 오늘 결혼한 신랑 신부는 몇 년이 지나도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게 사랑의 본드로 꽉 붙였으면 좋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꽉 붙여’를 외치면 여러분은 다 함께 ‘콩깍지’를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재치 있지요. 저는 얼마 전 부산에서 개최된 음악회에 초대받았습니다. 음악회 뒷풀이 때 건배사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오늘 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었습니다. 이 분위기에 맞는 시 한 편을 암송해 드리겠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클래식 음악’이라는 시입니다. ‘음악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아무 악기도 연주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그냥 좋다./ 자주 눈물이 난다./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 이 고요하고 순결한 힘을/ 감동이라고만 하기엔/ 왠지 가벼운 표현 같고/ 기도라고만 하기엔 왠지 무거운 표현 같고/ 어쨌든 음악을 들으면/ 아무도 미워할 수가 없다./ 죄를 지을 수가 없다.’ 오늘 우리를 아무도 미워할 수 없고 죄를 지을 수 없는 순백의 세계로 안내해주신  

지휘자님과 오케스트라 단원들께 감사드립니다. 건배구호는 제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하면 여러분은 ‘그냥 좋다.’로 화답해 주십시오.” 

  이 건배사에 대한 반응이 어떠하였을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술을 아주 좋아하는 언론인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요즘 이렇게 건배하더군요. “제가 처음 무슨 질문을 하면 여러분은 무조건 ‘아니옵니다.’로 답해 주시고 그 다음 질문을 하면 여러분은 ‘사랑이옵니다.’로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 놓고 자신이 술잔을 들고 ‘이것이 술이 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좌중은 약속한대로 ‘아니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좌중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하지요. ‘사랑이옵니다.’ 술이 사랑으로 바뀌는 주당다운 건배사입니다.

  스토리 건배사에 나오는 송년회 건배사를 소개해 볼까요.

  “연말이 되면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시 한 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얼마 전에 읽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올 한 해 추락한 것들과 꽃이 핀 모든 것들을 위해서 우리 건배합시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보듬어 갑시다. 제가 ‘사랑이여’라고 외치면 여러분은 잔을 들어 ‘건배’라고 화답해 주십시오.” 연말에 한번 변용하여 써먹어 보시지요.

  그 책에 나오는 건배사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해외 나갈 때 무엇을 챙겨갑니까? 많은 사람들이 고추장, 김치, 김을 필수적으로 챙겨서 떠납니다. 그런데 바람의 딸 한비야씨는 해외에 나갈 때 다른 세 가지를 꼭 챙겨간다고 합니다. 바로 태극기, 전통엽서, 단소입니다. 그녀는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이것들을 꺼내놓고 한국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이름을 한글로 써서 선물하면 다들 신기해한다고 합니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에 대한 자부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자랑스러운 한국’이라고 외치면 다 함께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외쳐주세요.”

  요즘 연평도 사태로 우리 모두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안타깝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결핵약 지원을 위해 북한을 수십 차례 드나든 존 린튼이라는 분을 만났더니 이렇게 이야기 하시더군요. ‘여러분은 북한이 아닌 남한에 태어난 사실 만으로도 수만 번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 말에 새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감사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렇게 외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하면 여러분은 ‘감사합니다.’고 외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11.2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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